이종주 KBS포항방송국 아나운서

5월은 계절의 여왕, 장미의 계절, 사랑과 감사의 달, 청소년의 달 등 수식어가 많다. 특히 어버이의 달이다.

과거에는 카네이션을 부모님께 달아드린 적 많지만 지금은 장성한 자녀들이 내 가슴에 달아준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도 몰래 눈물이 자주 고인다. 이 순간에도 눈물이 핑 돈다. 내가 지금껏 지내온 건 어머니 덕분이다.

못난 날 위해 평생 고생만 하다 호강한번 못하고 15년전 6남매앞에서 목사님의 임종축복 안수기도를 마치자 바로 천국으로 떠났다. 어머니가 7남매를 키우며 고생하던 일이 눈에 선하다.

올해 생존했다면 90세다. 내가 다니는 포항중앙교회 연세가 높은 안나여전도회 어르신들은 최연소 85세이고 90세를 넘는 분이 여러분이다. 최고령 박권사는 101세가 된다.

그런데 어머니는 겨우 74세에 골다공증으로 돌아갔다. 자식된 도리로 너무 일찍 돌아가 마음 한구석 효도한번 제대로 못한 죄송함이 가득하다.

나도 벌써 60세가 됐지만 어느 해보다 더 어머니가 그립다. 지금쯤 집에서 잘 모시고 싶고 해외여행도 함께 가고 싶지만 그리 못하니 허전하기만 하다.

나는 KBS포항방송국 아나운서지만 바쁜 시간이 아니면 1년 52주중 몇 주만 빼고는 2부 예배후 여전도회 권사들과 평균 10분정도 데이트(?)를 즐긴다. 누가 이분들을 만나라거나 위해 기도해달라는 권면은 않는다. 하지만 내 스스로 어머니께 평소 잘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으로 어머니를 뵙는 마음으로 손도 잡아드리고 세상사와 가정사를 주고받으며 건강을 위한 기도도 해 드린다.

사탕, 백설기 꿀떡, 따뜻한 차 등을 가득 안고와 권한다. 마치 아들처럼 대해주는 한결같은 사랑을 느낀다. 매주 이렇다 보니 평소보다 조금 늦으면 날 두고 몸이 불편한가? 가정에 무슨 일이 있나? 걱정부터 한다.해드린게 별로 없지만 과분한 정이 둠뿍 느껴진다. 매주일은 행복한 날의 연속이다.

그때마다 어머니가 더욱 떠오른다. 당신은 일제강점기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15세 나던 해 두살 연상의 아버지와 결혼했다. 조상 논밭뛔기 한평없이 5남 2녀를 키우느라 얼마나 힘겨웠을까? 내 고향은 영주 남동쪽 8㎞ 떨어진 낙동강 내성천 주변인 내림2리(안수구리)다.

내 기억에 우리집은 농토는 없었고 50가구 마을 문중의 소작농이었다. 부모님은 길 삼과삼베 짜기, 밤에는 개량식 가마니 짜기, 봄, 가을에는 한 달 농사로 목돈이 되는 누에치기, 보리와 조 디딜방아 찧기 등 쉴틈이 없었다. 우물물을 버지기로 머리에 여다가 물독에 부었고, 한 겨울 칼바람에 1㎞ 떨어진 개울에서 찬물에 손 빨래를 해야 했다.

초저녁 잠이 많은 어머니는 식사후 벌써 졸았다. 첫닭이 울면 해야 될 일과는 1년 내내 이어졌다. 늦은 밤 호롱불밑에서 잠을 물리치며 헤어진 양말과 바지를 꿰메는 고역도 당신 몫이었다.

당시 우리 가정은 불자 집안이어서 부모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그러다 둘째 종순 누나와 셋째인 내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해 부모님도 회갑 후 예수님을 영접했다. 작고전까지 경,조사를 돕거나 고추 따고 밭 메며 받은 품삯, 산에서 캔 백출 등 말린 약초를 한약방에 판 돈 등으로 헌금과 십일조를 철저히 냈다. 자식들보다 신앙생활을 잘 해나갔다.

지금 이순간 그렇게 사시던 어머니가 그리워 진다. 5월이다. 살아가는 우리들 누구나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해볼 계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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