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해 행동한다. 좌우 구분은 오른손 왼손, 오른발 왼발 등 극히 원초적이며 생태적인 속성에서 비롯되지만 시대에 따라 당대의 지배관념이 투영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좌도와 우도, 산과 바다를 기준으로 전라좌도와 우도로 지리적 구분을 했다. 국가정치제도에서는 좌측 선호현상이 두드러졌다.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았고, 문관은 좌측, 무관은 우측에 자리했다. 좌우는 동서를 의미했기 때문에 문관은 동반, 무관은 서반으로 불렀다. 왼쪽은 성스러움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일상적으로 가정에서 쓰는 새끼는 오른쪽으로 꼬지만 금줄로 쓰는 새끼는 왼쪽으로 꼰 왼새끼를 쓴다.

제사를 치를 때 신주 중심에서 볼 때와 차례를 지내는 이를 중심으로 볼 때, 왼쪽과 오른쪽은 반대라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젯상의 진설(陳設)에도 좌우 구분이 명확하다. 장례 풍습에도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는 상복의 오른쪽 어깨, 부친이 세상을 떴을 때는 왼쪽을 드러내는 등 주자가례에도 없는 좌우구분이 있다. 우리옷은 '우임'이라 해서 왼쪽 옷을 오른쪽 옷 안쪽으로 여민다. 모화사상의 일면이라 할 수 있다. 예부터 중국에서는 좌임을 오랑캐 법도로 보았다. 양복은 좌임으로 현대인은 서양오랑캐옷을 입고 사는 셈이다.

근대에 들어와 서구문화가 들어오면서 좌우 개념의 일대 혼란을 가져왔다. '라이트(우)'는 선이고, '레프트(좌)'는 악이라는 미국식 가치관이 들어온 것이다. 특히 남북 간의 치열한 대립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우나 좌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측면이 강하다. 사회제도와 관념이 지나친 구분과 차별을 낳고 있는 것이다. 좌우 어느 한쪽을 선호 한다는 것은 한 때 유행이나 시대조류와 같은 것으로 편견이다.

조선 숙종 2년(1676년) 퇴계 이황을 모신 안동 호계서원에 제자 학봉 김성일과 서애 류성룡을 추가 배향하면서 누구의 위패를 윗자리인 왼쪽에 놓아야 하는지를 두고 다툰 이른바 병산서원과 호계서원 간의 병호시비(屛虎是非)가 400년만에 종결됐다. 문중과 후학이 '좌 서애 우 학봉'으로 하기로 결론을 냈다고 한다. 어제 두 문중 대표가 경북도청에서 김관용 도지사가 보는 가운데 확약 문건에 조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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