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 정치부장

고대 중국은 환관의 힘이 막강해 역사에 끼친 악영향도 컸다. 진나라 환관 조고는 불로초를 빌미로 시황제를 속이고 권력을 얻어 국정을 어지럽혔다. 시황제가 순행길에 죽자 음모를 꾀해 장남 부소를 죽이고, 어리석은 호해를 황제로 앉혔다. 호해 집권기 조고의 권력욕으로 조정엔 피바람이 불었다. 아방궁 공사로 비명이 잦아들지 않았다. 조고는 2세 황제에게 아부하며 천하의 실상을 가리고,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

'지록위마(指鹿爲馬 : 사슴을 말이라고 가리킴)는 윗사람을 농락해 권력을 휘두른다는 뜻이다. 조고의 술책과 이에 놀아난 2세 황제를 빗댄 말이다. 조고는 권력을 시험하려고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馬)이라고 했다. 황제가 "이거 사슴이 아닌가?"라고 신하들에게 묻자 일부가 "그러게요, 저건 사슴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조고는 그 날 사슴이라고 한 신하들을 죽였다.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 난리가 이어지며 나라가 위태롭자 조고는 폭정 혐의를 2세 황제에게 씌우고 살해했다. 위기를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나라는 망했다. 오늘날 반면교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를 박근혜 정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상황에 꿰맞춰 보자. 청와대 대변인의 예는 대다수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꿰뚫어 볼 수 있는 심복인 때문이다. 뒤집으면 대변인은 통계상 일거수 일투족, 즉 품성, 인격, 국정철학, 국가사관까지 대통령과 맞아 떨어지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몇가지 의문이 남는다. 과연 윤 전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했을까? 아니면 대선기간 단순히 공격적 차원의 나팔수 임무를 다한 충신이기에 대변인으로 낙점된 건 아닌지. 하지만 대변인 선임에는 두 가지 사안 모두 검토된 것 같지 않다.

정부는 이번 시점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윤창중의 하루 일과 중, 그의 술버릇, 대 여자관계, 국정사관 등을 총망라한 또 다른 스크랩이 있을 수 있다. 이 상황을 너무나 잘 아는 정부측이 하나의 커넥션을 조장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저버릴수 없는 이유로, '윤창중이 술만 먹으면 개가 된다'는 보통 인지적인 상황을 넓게 뿌렸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환관정치 커넥션으로 압축된다.

다만 더 두고볼 일은 윤 전 대변인의 행동거지가 박근혜 정부의 흠결 논의와 연계될 수 없다는 점이다. 임명권자 책임이라지만, 국정 논제도 아니고 단순개인 문제로 치부해도 될 사안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몰고 가는 듯한 때문이다. 적어도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인사정책으로 몰아부치는 예단은 무리다.

평소 인사검증은 과거 행적의 규명이다. 예측불허 상황까지 잣대를 대면 안된다. 언뜻 임명과정에 이미 그럴만한 행동이 엿보이는 인물을 임명한 그 자체는 잘못이라는 논리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검증수단의 범위가 '내일 윤창중이 어느 특정 여성을 성추행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놓고 그에 대한 임명의 긍·부정을 결정해서는 안된다. 박근혜 정부의 선택은 과거 윤창중을 보고 결정한 것이지, 오늘 윤창중을 예단한 결과는 아니라는 점에서 잣대를 함부로 댈일은 아니라고 본다. 예컨대 오늘 나타난 현상만을 보고 국가 미래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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