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에선 '갑'과 '을'이 없는 아름다운 관계를 많이 볼 수 있다. 일정한 거리로 서 있는 나무들의 간격, 시냇물이 졸졸 정겨운 소리를 내게 해주는 돌멩이, 향기를 머금고 있는 꽃과 꿀을 채취하는 벌들, 하나하나 열거하면 끝이 없을 정도다. 우리가 이 모든 것들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서로를 향한 배려 때문이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나무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만약 여러 나무들이 바짝 붙어 서 있다면 골고루 영양분을 받지 못해 말라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나무는 자기보다는 먼저 다른 나무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간직, 자기는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서 있어도 다른 나무가 서 있는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시냇물이 졸졸 소리를 내면서 흘러갈 수 있는 것도 흐르는 물속에 자신의 작은 몸을 던진 돌멩이들의 헌신 덕분이다. 돌멩이가 없다면 아무 소리 없이 흘러가는 시냇물이 얼마나 적막하겠나. 꽃이 아름다운 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꿀을 채취하기 위해 향내를 맡고 날아온 벌들에게 기꺼이 자신을 내주는 꽃의 이타적인 마음이 꽃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벌 또한 꽃잎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꿀을 채취한다. 이런 꿀과 벌의 상생의 모습은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나무의 모습만큼 감동을 선사한다.

그러나 사람 사는 사회에선 상대방이 어떤 상처를 입더라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쟁취하기 위해 온갖 방법과 수단을 마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갑'과 '을' 사이의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 생각 때문이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갑'과 '을' 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어 '갑'이 흥하면 '을'도 덩달아 흥하며, '갑'이 잘못되면 '을'도 마찬가지 신세가 된다며 '갑(甲) 을(乙) 동전론'을 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갑'이면서 '을', '을'이면서 '갑'인 공동운명체다. 오랜 관행으로 여겨왔던 잘못된 갑을관계는 뜯어고쳐야 마땅하지만 편 가르기로 공생관계가 깨져서는 안 된다. 나무와 나무 사이, 시냇물과 돌멩이, 꽃과 벌처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우리사회에도 충만해지면 '갑', '을'이 없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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