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열 교수

1887년 3월 6일 조선시대 처음이자 우리 역사이래 처음 경복궁 건청궁에서 환한 전등불이 밝혀졌다. 왕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은 그 불빛아래 신기함과 경탄을 감추지 못했다. 그 장면은 그림으로 신문 잡지에 많이 실리기도 했다.

이 때 전깃불을 밝히는데 사용된 백열전구는 1879년 미국의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였다. 에디슨은 1881년 최초의 상업발전소를 뉴욕에 설립했고, 이 후 우리나라에도 그 기술을 수출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완전한 제품이 아니었고 기술력마저 떨어져 너무 고장이 잦았고 전깃불이 자주 켜졌다 꺼졌다 해서 '건달불'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한 1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우리 생활에 밀착한 필수적인 생활용품으로 자리매김했던 '건달불' 백열전구가 이제 사라지고 도저히 볼 수 없는, 역사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이 될 전망이다.

내년 1월부터 백열전구의 생산, 수입이 전면 금지 되기 때문이다. 조선 말 시중에 관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켰던 '건달불'을 켜는데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고종은 1898년 한성전기회사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를 설립했다.

이 후 석탄, 수력, 석유, 가스 등 다양한 종류의 발전소가 국내 곳곳에 들어섰고, 1978년에는 고리원자력 발전소가 미국기술을 도입해 준공, 가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원자력 발전시대가 개막되었다.

박정희 정권 이후 한국의 원자력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해 선진국 기술과 별차이가 없을 정도가 된다. 캐나다 기술로 월성원전의 중수로를 건설했을 뿐 아니라, 프랑스 기술의 발전소도 건설했다. 원자력은 지하자원이부족한 우리나라 전기생산에 엄청난 공헌을 하고 있다. 현재 사용되는 국내 생산 전기의 약 30%를 원자력발전이 담당하고 있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2009년 12월 UAE 원전수주로 우리나라는 일약 원전수출국 대열에 올라서며 온 국민을 감동시키기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 한 국가의 전기 품질은 정전시간으로 알아볼 수도 있다. 국제 컨설팅업체 KPMG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1년 호당 정전시간 12.4분으로 전기품질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고작 10%안팎의 전력공급 예비율을 고려한다면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경이로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별 생각없이 필요에 따라 쓰고싶은 대로 전기를 쓰고 있지만, 모든 게 보이지 않는 노력의 산물임을부정할 수 없다.

최근 각종 비리와 부정사건으로 원자력은 한 순간에 온국민앞에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했다. 숨가쁘게 앞만 보고 달리다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결과다.

일부 부도덕한 거래와 손쉽게 일하려는 유혹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난 모든 노력이나 공헌을 부정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진정한 원전 선진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전세계 원전 사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에너지 수입국이 원전 수출국으로 올라서기 위해 쏟았던 그 힘든 노력, 그 이상의 피와 땀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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