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환 문경문화원 사무국장

2~30년 전 현수막을 걸려면 광고사에서 손으로 글씨를 써서 달았다.

미리 글씨 '뽄(本)'을 떠서 천위에 올려놓고 페인트칠을 해 만들었다. 이 시대에는 그런 글씨 잘 쓰는 사람들의 주가가 높았다.

차트글씨라고 해서 모조지 전지에 지금의 PPT 같은 걸 잘 만들면 군대나 회사에서 대접을 받던 마지막 시대였다.

그러니 현수막이 흔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개인컴퓨터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현수막 만드는 것이 기계 차지가 되고, 글씨체도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은 물론 그림이나 사진까지 척척 현수막이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게 홍수가 됐다. 오죽하면 현수막 지정 걸이대를 설치하고 이 걸이대 외에는 못 걸도록 했을까?

그런데 이 지정 걸이대에 현수막을 안 걸고, 온 거리에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치적을 홍보하는데 현수막의 현란한 휘날림에 대한 유혹을 못 뿌리친 까닭이다.

사실 현수막이 즐비한 모임에 들어서면 가슴이 지끈지끈 그 구호와 이미지에 금방 동화되면서 나도 모르게 구호를 외쳐야만 될 것 같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여러 운동경기의 응원전에서 양손에 펼쳐 든 작은 현수막이나 대형건물에 나붙는 걸개그림에서도 그런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그러니 무슨 자랑거리를 홍보하는데 현수막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 만 가지의 인쇄물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니 정치인이나 지방자치단체는 인쇄로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을 확보했고, 의정보고서나 자치단체의 소식은 얼마든지 엮어 배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러니 툭하면 '소식지'가 날아든다.

대부분 너무 지나 잊혀질만한 치적들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다. 이미 지역신문에 다 보도된 내용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니 그게 크게 읽히지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이 소식지들은 끊임없이 날아든다.

지금은 인쇄물 만들기가 좋아 이를 다량으로 배포해 홍보하기 쉬운 것 이상으로 사람들은 더 빨리, 더 많이 정보를 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시대에 지나간 날의 기록물을 만들어 배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귀가 안 맞는 것 같다.

이제 시민들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

현수막이나 소식지에 실린 내용들보다 그 이면에 있는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너무나 소상하게 알고 있는 시대다.

촌에 사는 노인들이라고 그걸 모른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은 그 자리에서 그 자리가 요구하는 일에 정말 정성껏 일하는 것이 가장 큰 홍보다.

현수막이다, 소식지다 해서 이거 잘 했네, 저거 잘 했네 하며 사진 대문짝만하게 낸다고 믿어 줄 시민은 없다.

알뜰살뜰 내 살림 같이 예산을 집행하고, 공정하고 공평하게 정책을 펴고, 과정을 지키고, 법규를 따르는 것.

진정으로 그 자리에서 헌신하고 한 눈 팔지 않는 것. 그것이 지성이요, 신뢰고, 이 보다 더 좋은 홍보는 없을 것이다.

그걸 잘 하고 있는데도 지나간 유물인 현수막과 소식지를 만들고 있는 보좌진들이 있다면 이를 어찌 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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