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호 수필가

청포도 익어가는 여름이다. 능금 빛 머금은 능소화가 그리움에 지친 듯 담장 울타리에 졸고 울 밑에 봉숭아 부끄러운 듯 살포시 웃고 있다.

내/영혼이 불타오르는 날이면/가슴앓이 하는 그대 정원에 서서/ 그대의 온밤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살 것이다. 꽃피고 새가 우는 고향에는 지금 쯤 늙으신 어머니가 식은 보리개떡으로 시장 끼를 때우고 있겠지.

모깃불을 피워놓고 어머니가 홍두깨로 빚은 국수를 먹은 후 멱을 감으로 냇가에 나가면 굵은 별들이 쏟아져 세상이 다 내 것인 양 행복하기만 했던 고향의 여름, 아 돌아가고 싶다, 첫사랑 순이와 벌거벗고 뛰놀던, 내 사랑 철수와 손잡고 거닐 던 고향으로 가고 싶다. 언젠가 가리. 나중에 고향 가 살다 죽으리.

외할머니가 준 10원으로 아이스케기 한개 사서 누나 한모금, 내 한입, 동생 한 모금 먹으며 그 솜사탕 같이 달디 단 고향의 맛,

등목 하던 옆집 순이의 뽀얀 살결위로 물방울 또르르 굴러가는 소리에 두근거리던 가슴에 내려앉는 박하 향 같은 고향의 향내,

달빛이 지켜주는 당수나무 밑에서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용기를 내어 시도한 첫 입맞춤이 허락되던 날 들뜬 마음으로 잠을 설쳤던 그 여름밤의 추억.

눈물과 회한의 공간이자 상처와 그리움, 아쉬움과 안타까움, 후회와 좌절, 영광과 희망의 알갱이들이 푸른 실루엣으로 우두커니 머무르고 있다.

고향은 언제나 우리를 유년이게 하고 모독과 수모로 억울할 때 돌아가 안길 수 있는 내 초라함도 부끄러움도 다 감추어 주는 안식처다. 우리가 멀리 떠나와 있을 때 고향은 낯선 세상에 버티는 힘이 되었고 세상을 살아가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면 위로와 격려, 일어섬의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꿈이면 보는 낯익은 동네/ 우거진 덤불에서 찔래꽃 꺽다나면/ 꿈이 었던곳,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우리를 오라고 하는 손짖이 있는 곳, 오! 아름다운 너와 나의 고향 포항, 그 이름도 아름다운 마을 기계, 상옥, 하옥, 달전, 임곡, 금광, 비학, 월포리, 명월리 ----,

절름발이 아재의 고단함도 귀머거리 고모의 쓸쓸한 고독도 자식을 먼저 보낸 할머니의 가슴시린 눈물도 다 갈무리 하며 의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던 그곳이 고향이 아니던가.

고향 그곳에는 무념의 상태로 물레질하여 구워낸 막사발 같이 질박하고 지극정성으로 빚어 담아낸 비워서 더 출렁이는 항아리처럼 이 세상 어둡고 깊은 가슴들이 뒤엉켜 삶의 향기를 피어 올리는 곳이다. 아! 한없이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그러나 한없이 높고도 낮은 우리들이 가장 사랑해야 할 곳이 고향이다.

"꿈으로 영글고 빛으로 신나는 포항국제 불빛축제" 가 내 고향 포항에서 열리고 있다. 아희야! 우리가 바라는 손님은 산 넘고 물 건너 지갑 두둑히 채워 먼 길을 달려오고 있구나, 저들의 가슴에 빛나게 채워줄 그 무엇을 위해 포항의 멋과 아름다움을 다 함께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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