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산업 어우러져 하루하루 발전하는 포항보며 출향인 한사람으로 뿌듯

김일권 시인·아동문학가

가난에 지쳐 도망치듯 떠나온 고향 영일·포항. 세월이 흘러 43년이 지난 올해 여름 아내와 아들 딸 사위 그리고 손주 등 대가족이 고향을 다녀왔다.

4~5년전 부터 혼자 고향에 자주 가보았는데, 산과 바다는 그대로지만 고향의 의미 있는 변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고향에 숨겨진 보물을 새롭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내도 3년전 나를 따라 처음 고향에 다녀온 후부터 포항행을 무척 좋아한다. 폐교자리에 세워진 포항전통문화체험관을 보고 매료가 된 것 같다. 마치 경복궁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전통한옥의 모습. 지난 5월에는 전통혼례식 때 신랑이 말을 타고 입장하는 광경 등을 지켜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아내는 우리가족 모두 여름휴가는 포항에서 보내자고 제안했다. 8월 여름휴가 첫날은 기북 덕동 전통체험관과 주변 북관대첩의 영웅 충의공 정문부장군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다음 날, 우리가족은 국제불빛축제를 보기위해 영일대를 찾았다. 우리나라 최초 해상누각 영일대가 아름다운 오월의 신부처럼 영일만의 바다 가운데 해맞이 명소로 솟아 있었다. 뉴욕의 맨하탄 바다위에 횃불을 들고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처럼, 500m쯤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영일대는 한마디로 '명작'이었다. 우리가 아는 누각은 경주 안압지의 동궁 누각과 경복궁의 경회루다. 그러나 이 영일만 바다위에 세워진 해상누각은 포항 시민의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동해를 향해 우뚝 서 있었다. 포항은 분명 해맞이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맛보며 가족들에게 고향 포항의 의미 있는 발전과 변화에 대해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때 저 멀리 포항제철 건물에서 네온사인불빛이 하나둘 밝혀지더니 하늘에는 찬란한 불빛의 향연이 시작 되고 있었다.

그리고 기계면 문성리에는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이 개관 되었다. 우리나라 경제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던 새마을운동. 그 대표적 발상지가 고향인 것이 자녀들에게 너무도 자랑스럽고 이 기념관도 또 고향 포항의 가치를 더 한층 높여 주고 있다.

다시 기북에 들어와 한룻밤을 자고 다음날 비학산 휴양림 공사 현장을 찾았다. 오작교, 무지개다리와 너와로 된 정자, 비학산 가는 길 등 정감이 가는 공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밖에, 폐교직전의 기북초등학교는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기북면은 신라시대 화랑들이 소나무의 정신을 이어받아 충절을 배우며 심신을 수련하였던 옛 손얼벌. 그러한 역사적 배경의 특성을 살려 활쏘기와 승마를 특성화하여 마침내 유소년승마단까지 창단돼 있다. 포항은 항구도시로 포스코가 있어 산업도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은 대부분 지역이 농촌과 어촌으로 구성 되어있다. 고향을 자주 다니면서 크게 놀란 것은 이 작은 시골학교에까지 포항시장께서 직접 찾아가서 보살핀다는 것이다. 감동적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정말 자랑하고 싶은 일들이 고향 포항에 갈 때 마다 새롭게 생겨난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서 보고 싶은 그런 곳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번 추석에도 고향에 다녀왔다. 벌초를 하고 오후에 영일대를 다시보고 아내가 좋아하는 포항의 물회를 먹고 그렇게 서울로 올라 왔다.

출향인의 한사람으로서 고향에 가는 재미를 느끼도록 하는 여러 굵직한 사업들을 주관하는 포항시와 공무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 이러한 고향의 문화사업이 관광 산업을 발달시키고 나아가 문화 콘텐츠 산업으로 발전 한다면 포항의 성장은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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