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민혁당 잔류세력으로 오래된 뿌리 갖춘 지하조직, 검찰, 철저하게 진상 조사해야

김상태 정치부장

통진당 이석기 의원의 재판 과정에서 RO의 실체와 관련한 설전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핵심 쟁점이 되고 있는 이석기 RO의 실체에 관한 새로운 증언과 자료를 통해 이석기 RO와 관련한 몇 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검찰의 입장은 2003년 8월 이석기 출소 후 '알 수 없는 시기'에 지하혁명조직 RO가 결성되었다는 것이고, 올 5월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수사회에서 열린 비밀회합에 참석한 김모씨로부터 2003년 6월 만들어진 '유알오(URO)'라는 제목의 문건을 입수했으나 이 문건이 이석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유알오'가 '통합(Unified 혹은 United) RO'인지 '지하(Under) RO'인지 등에 관해서도 정확히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이석기 RO의 시작은 2003년이 아니라 1990~1992년 사이에 순차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이는 1992년 창당된 '민족민주혁명당'(이하 민혁당)과 관련이 있고, 당시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이석기가 1993년 8월 초순경 작성한 '1993년 경기남부위원회 상반기 사업총화' 보고서에 RO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서울고법 이석기 국보법 위반 판결문 참조, 2003년 3월 21일)

당시 이석기는 "지역역량 현황으로 동창회('민족민주혁명당'의 위장명칭) 3명, 동문회('반제청년동맹'의 위장명칭) 11명, 친목회 104명이며 기본역량은 700명, 최대역량은 2천명"이라는 내용이 담긴 컴퓨터디스켓 1개를 민혁당 중앙위원이었던 하영옥에게 보고하고, 이를 다시 중앙위원장 김영환에게 보고하게 했다. 당시 민혁당 중앙위원장이었던 김영환 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 보고내용에 등장하는 '친목회'가 바로 RO이며 당시 이석기가 직접 지도하던 RO조직이 4개였으며 조직원이 104명이었다고 한다.

김영환씨에 따르면 이석기가 지도하던 이 4개 RO들이 1999년 민혁당 사건 조사 과정에서 한번 도 해체된 적이 없으며, 조직망도 거의 파악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석기는 2003년 출소 후 보다 통일적이고 효율적인 지도를 위해 기존 4개의 RO를 연합하였고, 이것이 바로 검찰의 공소장에 등장하는 URO 즉 '연합(United) RO'이며, URO의 U는 지하(Under)가 아니라 연합(United)이란 뜻이고, 이 URO는 RO의 연합을 위해 사용한 단어일 뿐 완전히 새로운 조직이라고 볼 수 없고, 핵심은 과거 민혁당 시절부터 이석기 휘하에 관리되어져 온 RO의 확대와 재건이라고 볼 수 있다.

향후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통해 이석기 RO의 성격을 보다 정확히 규명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민혁당 시절부터 계속 이어져온 이석기 RO의 실체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불필요한 논쟁에 빠질 필요 없이 이석기 RO에 대한 모든 혐의를 효과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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