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확률 이론 대신 '자연 빈도' 사용, 쉽고 직관적으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살림 출판 게르트 기거렌처 지음 / 전현우·황승식 옮김

상황을 가정해보자. 당신은 살인죄로 기소돼 법정에 출두했다. 당신의 DNA가 희생자에게서 찾아낸 DNA 흔적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치가 우연히 일어날 확률은 10만 분의 1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정보를 "10만 명 중에 1명꼴로 DNA 일치가 관찰됩니다"라고 진술한다면 꽤 많은 사람이 살인자로 의심받을 수 있다. 성인 인구 100만 명 도시 안에도 DNA 표본과 일치하는 사람이 10명 정도 있다는 통계다. 이렇듯 숫자를 말하는 방식을 바꾸면 진실이 보인다.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저자 게르트 기거렌처는 "기술에는 심리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심리학계의 거장이자 '올바른 선택'에 관해 꾸준히 연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위험과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밝히고 그 해결책을 내놓는다.

총 3Part로 나뉜 이 책은 먼저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죽음과 세금 말고 확실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세상의 불확실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늘어놓은 실례들은 내가 가지고 있던 확실성에 대한 환상, 위험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고 그런 착각을 부추기는 너무나 거대한 집단들에 대한 공포가 세상의 불확실성에 대한 자각을 불러온다.

Part2에서는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해 '확실한 것은 없다'고 자답한다. 특히 챕터 9와 10에서는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전문가들, 검사·판사·변호사 등이 어떻게 숫자를 착각하고, 그 착각이 죄 없는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고 또 진짜 범죄자를 얼마나 쉽게 풀려나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은 그들이 언제나 들이미는 '수치', '숫자', '통계', '확률' 등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기껏해야 17세기 중반에 등장한 확률 이론은 진화적으로 우리에게 맞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류 시작부터 우리에게 익숙했던 '자연 빈도'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쉽고 직관적으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지 증명한다.

Part3에서는 계산맹 상태가 어떻게 악용되는지, 숫자를 읽을 줄 아는 몇몇이 그렇지 않은 우리를 얼마나 쉽게 속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바보였구나' 하는 상실감만 남기고 끝내지 않는다. 실제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1~2시간 동안 표현 방법을 바꾸는 방식(확률에서 자연 빈도로)을 알려주고,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을 테스트해본다. 그 결과는 놀랍다. 단지 어려운 표현 방법을 버리고 마음이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방식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도처에 산재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막스플랑크협회의 인간개발연구소장인 게르트 기거렌처(Gerd Gigerenzer)의 행동과학 연구 성과는 1991년 미국과학진흥협회상과, 2002년 독일 과학서적 저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생각이 직관에 묻다' '제한된 합리성' '휴리스틱이 우리를 스마트하게 만든다' 등 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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