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조각 공부 하며 해방이후 1회 국전 '특선', 불상연구·후진양성 힘써

이종기 포항시립미술관 도슨트

1910년 전후 영남출신 1세대 화가들의 작품을 모은 '영남구상미술전'이 다음달 23일까지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그중 경주와 포항 출신 작가들의 발자취와 작품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신라석공의 후예, 경주 김만술 작가다.

1911년 경주 노동동에서 출생해 서울 미술학원에서 공부했고, 일본 히나코 지츠조 조각연구소에서 2년간 수업(1942-44)을 했다. 그 기간에 조선미술 전람회에서 '박군의 상'('42년)과 '와다나베씨의 상'('44)이 각각 입상돼 일찍 그의 조각에 대한 재능이 돋보였다.

해방이후 1회 국전에서 '소녀두상'이 특선되고, 그 후 고향 경주에서 주로 기념조형물을 제작하며, 경주예술학교수로도 재직했고, 민속 전통조각가로서 불상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 공로로 제6회 향토문화상('67)과 국민 훈장 석류장('70)을 받았다.

전시장에 그가 받은 빛바랜 감사장과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있다.

그는 일제치하에서 어려운 운전면허증을 취득해('39) 당시 희귀한 직업인 택시 기사를 한 특이한 사람이다. 양복입고 넥타이를 매고 택시를 몰고 시내를 달릴 때면, 지나는 사람들이 넋을 잃고 쳐다보았고, 특히 인기최고의 신랑감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지방군수의 딸을 아내로 맞는 행운을 얻었다고 한다. 노란 상의에 베레모를 쓰고, 긴 코드를 걸치고 다녔다고 하니, 그의 멋진 모습에서 예술가로서의 낭만과 팻션 감각을 엿볼 수가 있었을 것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좋아해 그의 작품 중에는 순진한 어린이모습들이 많다.

포항시립미술관에는 한 사내가 자기 몸을 묶었던 단단한 밧줄을 제 손으로 풀어내는 모습의 브론즈 동상이 있다. 1947년도 작품인 '해방'이다. 치켜세운 두 눈과 다문 입에서 분노를 뿜어내고, 튼튼한 다리에서 강한 삶의 의지를 읽을 수가 있다. 일제 압박에서 풀려나는 우리민족의 억눌렸던 감정을 잘 표현한 것이다. 당시 미·소 대립과 남북 좌우 이념갈등 속에서 자주독립과 완전한 해방을 갈망하는 우리의 간절한 의지 이기도하다. 처음에는 석고작품이었으나 나중에 청동으로 재 제작되었다고 한다.

또한 어린아이가 잉어를 두 손으로 겨우 잡고 있는 '동심'브론즈, 천진난만한 '보살상'과 '소년머리'석고가 있으며, 경주 출신의 대 문장가인 김동리와 박목월선생의 흉상조각도 전시돼있다.

이 외에도 황성공원에 있는 김유신 장군 동상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처음은 시멘트 성형물에 동선을 녹여 만든 분말을 입힌 것이었으나 70년대 주조물로 재 제작한 것이다.

경주서라벌 문화회관 앞뜰에 있는 '모자상'은 어머니가 벌거벗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평소 어린이를 좋아한 그가 1965년 어린이날 기념으로 제작한 것이며, 포항여고 교정에 있는 '신사임당상'도 그의 작품이다. 그리고 대구 망우공원에 있는 '곽재우선생'동상, 경북여고의 '모자상'등 많은 작품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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