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지혜·삶의 혜안 담겨, 문화융성 재창조 하는게 우선, 우리의 관심·역량 모아야 할 때

권영세 안동시장

미국의 정치학자 샤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 1927~2008)은 저서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에서 21세기는 '문화전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서로 다른 문명을 가진 집단 간 갈등이 될 것이라며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지난해 5월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최근에는 'KBS 이산가족찾기 기록물'과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교책판'이 2015년 세계기록유산 등재 대상으로 확정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록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비롯해 '조선왕조실록'등 세계기록유산 11건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 최대 보유국이자 세계 5위 수준으로 선조들의 혜안과 높은 문화역량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추진해 온 '목판 10만장 수집운동'의 결과물인 유교책판이 세계기록유산 등재 후보로 확정 되었다는 소식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를 자처하고 유교문화의 연원정맥으로서 자존심 강한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주고 있다.

이번에 등재 후보로 결정된 유교책판은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으로 305개 문중과 서원에서 기탁한 718종 64,226장으로 방대한 자료이다. 그 종류만 해도 유학자들의 문집 583종, 성리서 52종, 족보·연보 32종, 예학서 19종, 역사서 18종, 훈몽서 7종, 지리지 3종, 기타 4종이다.

유교책판은 국가 주도가 아닌 순수하게 민간에서 많은 자본을 투입해 제작되었다. 책판의 저자나 제작자들은 모두 조선의 지식인 계층인 사대부들로 조선왕조의 중앙집권화 정책과는 별개로 향촌공동체의 운영을 통한 지방자치를 선호한 계층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지식을 이용해 농법개량에 앞장서고, 유교의 이념을 배경으로 하는 인륜공동체의 구현을 향촌사회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특히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품성을 하늘로부터 부여 받았다'는 관념을 실천하면서 대동사회 구현을 갈망했다. 유학자들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학문에 대한 열정이 빛나는 유교책판, 그 속에는 조상들의 지혜와 삶의 혜안이 담겨있는 세계적인 기록유산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며 이제는 우리를 넘어 세계인들과 함께 공유하는 소중한 기록유산이다.

새로운 정부의 국정기조인 문화융성은 우리가 그동안 부끄럽게 여기던 전통문화의 가치도 새롭게 이해하여 의미를 찾고 우리 시대에 맞게 재창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물고기를 기르려면 먼저 물이 통하게 하고, 새가 오게 하려면 먼저 숲을 만들어야 한다.(欲致魚先通水 欲來鳥先樹木)'는 명제를 떠 올리며,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첫 관문인 국내심의를 통과한 유교책판이 당당히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과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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