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목소리 허용되고 진실·옳음 찾는 선택만이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린다

김기포 기계중앙교회 목사

2차 세계대전후 독일은 냉전 체제의 희생양이었다. 그리고 그 패전의 책임은 유럽 국가에서 유일하게 서독과 동독이라는 분단국가가 되었다. 패전과 분단의 아픔 속에 독일은 미래를 열어갔다. 먼저 독일은 유대인에 대한 만행과 학살을 사과했다. 독일이 오늘날 경제 부흥의 대국이 된 것은 진실에 입각한 올바른 역사를 세웠기 때문이다.

특히 나치의 만행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은 주변국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얻었다. 그것은 나중에 독일이 통일의 기반을 쌓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1990년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고 지금은 유렵에서 가장 앞서가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지금부터 50년 전 우리나라는 독일처럼 분단이라는 굴레속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그 당시 어떤 나라도 우리나라에 차관을 빌려주는 나라가 없었다.

1964년 12월 6일. 박정희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와 24명의 수행원만 데리고 경제개발에 필요한 차관을 얻기 위해 독일로 갔다. 먹고 살기에 바빴던 우리나라는 대통령 전용기가 없어 독일 정부가 민항기를 주선해줬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민항기에 일반 승객들과 함께 타고 무려 7개 도시를 경유해 28시간 만에 간신히 독일의 수도 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독일은 참 고마운 나라였다. 우리나라는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는 조건으로 독일로부터 차관을 빌려왔다. 그 차관으로 경부 고속도로를 만들고 체철소를 지어서 오늘날 경제성장을 이루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에 파견됐던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났다. 이역만리에서 함께 애국가를 부르면서 가난한 백성들이 흘려야하는 서러움의 눈물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눈물은 우리 자손들이 잘 살아 보자고 하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그로부터 50년후, 벌써 반세기가 흘렀다. 마침내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로부터 통일의 교훈을 배우기 위해 수행원 150여 명과 함께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독일 땅을 밟게 되었다. 이제는 가난한 나라도 아니고 설움에 복받치는 나라도 아니다. 그 만큼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만큼 국력도 신장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옛 동독지역인 독일의 5대 명문 공대 가운데 하나인 드레스덴 공대에서 통일구상을 발표했다. 바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연장선위에서 통일 대박론을 구체화한 통일구상인 셈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 발표한 3대 통일구상에는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및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간 동질성 회복' 등이다. 이것은 참으로 시기적절한 제안이다.

독일이 빠른 통일을 이루어 낸 것은 동서독의 자유로운 왕래였다. 남북한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민간교류부터 점진적으로 양국간의 대화의 채널을 넓혀나가야 한다. 자주 만나다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길은 만들어 지는 법이다. 지금 남·북은 사상이나 이념면에서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서 마음도 불편하고 이래저래 답답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다양한 목소리가 허용되고 그 다름 속에서 진실과 옳음을 찾는 선택만이 통일의 길은 열릴 것이다. 이제 봄이 왔다. 북한의 대동강에도 라인강의 기적처럼 그리고 한강의 기적처럼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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