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태어난 베이비부머세대, 남녀 동일한 혜택을 주었더라면 여성정책 만들지 않아도 될텐데

최병렬 바선모 경산 운영 위원장

얼마 전 휴대폰으로 초등학교 동창회를 한다는 문자 메시지 전송을 받았다. 더듬어 보니 졸업을 한지도 어언 40여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70여명의 졸업생 중 반은 상급학교에 진학하여 같이 수학을 했고, 나머지 반은 진학을 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함께 농사일에 종사하기도 했다. 또 일부는 고향을 떠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친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50년대 후반에 태어난 소위 베이비부머세대들이다. 특히나 여자아이들의 진학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저조했다. 아마도 당시의 남존여비 사상이 그대로 들어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형편이 어려워서 못시키는 거야 어쩔 수 없었겠지만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오빠나 남동생들의 희생양이 되고 차별을 당한 것은 가정이나 국가를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스럽지 못한 시대적 산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오늘날의 양성평등이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지만 당시 우리의 선조들이 선견지명을 가지고 남자와 여자가 아닌 아이큐나 학업에 대한 열의를 기준으로 하여 동일한 혜택을 주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다방면으로 더욱 눈부신 발전을 하지 않았겠느냐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날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여성들만을 위한 각종 혜택이나 정책들을 지금처럼 별도로 만들거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란 생각에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기억 컨데 정이라는 친구는 글씨체도 뛰어났고 공부도 무척이나 잘했으나 진학을 하지 못하고 농사일을 도우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그는 여유가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은데 정이 많아 친구들 간 안부도 자주하고 때로는 통 크게 쏘기도 한단다. 달이라는 친구 역시 정이만큼이나 공부를 썩 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학을 하지 못한 채 객지로 나가 독학하여 우리나라 굴지의 대그룹 계열사 차장까지 하다가 퇴직한 후 지금은 국내와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여 100여명 이상의 직원을 거느린 오너로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위와 같은 친구들은 소위 가방끈이라도 조금 길게 매어주었다면 큰 인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같은 친구로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이들과는 달리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한 친구들은 공무원을 비롯한 일명 신이내린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 직원, 성직자인 신부님까지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회활동을 하는가하면 수야 라는 친구는 모 기업의 대리점사장을 하다 돈을 벌어 중소도시에 빌딩까지 매입하여 건물임대는 물론 처음으로 식당까지 운영하다 실패하고 지금은 어렵게 살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렇게 많은 동기들 중에 유독 옆의 짝꿍인 영화가 오늘따라 더 보고 싶다. 작은 체구와 예쁜 미모에 조금은 당돌한 여자로 기억된다. 옆 좌석에 같이 앉아 가끔은 사랑싸움까지 한 친구다. 요사이 말로 일명 스토킹을 한 꼴일 수 있고 그녀는 일방적인 피해자인 셈일 수 있다. 아무튼 졸업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언젠가는 동기회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하고 또 이러한 모든 인연들이 운명이기도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6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늦게나마 고인이 된 친구들의 명복을 빈다.

이제 남은 친구들만이라도 동기회란 모임을 통하여 자주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옛 추억을 더듬어가며 정담도 나누고, 보다 재미나는 미래의 삶을 함께 열어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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