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탑동 오층전탑 해체현장.

벽돌로 쌓은 통일신라시대 전탑(塼塔)에서도 나무로 만든 목탑과 마찬가지로 중심 기둥인 심주(心柱)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들판에 선 보물 57호 조탑동 오층전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안동시 의뢰로 지난해 5월4일 이래 이 벽돌탑을 해체 중인 문화재 보수업체 JD건설과 서진문화유산(소장 김선덕)은 23일 현재 탑신 99개 벽돌층 중 2층 덮개돌에 해당하는 옥개부에 이르기까지 60층을 해체한 결과 탑 중앙을 관통하는 나무 기둥이 남아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해체 직전까지 5층인 방형 탑을 위에서부터 차례로 해체해 가는 과정에서 4층 옥개석 위쪽에서 심주가 박힌 자리를 발견한 데 이어 그 아래 2층과 3층에 걸쳐서는 탑신 아래 돌로 쌓은 기단에 이르기까지 박힌 심주를 확인했다.

찰주(刹柱)라고도 하는 심주는 탑 기단부 남쪽면 중앙에 마련한 움푹한 구덩이인 감실(龕室) 바닥에 뿌리가 닿은 상태였다.

이 나무기둥은 2층 이상 부분은 썩어 없어졌지만, 남은 부분을 보면 통나무를 한 변 23~24.5㎝가량 되는 방형으로 다듬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선덕 소장은 "조탑동 전탑은 통일신라시대 창건 이래 잦은 수리가 있었다"면서 "특히 조선 초기와 일본강점기 때인 대정(大正) 4년(1915)에는 대대적인 수리가 있었던 만큼 지금 발견된 심주가 정확히 언제 때 것인지는 나이테 연대 측정 등을 통해 밝혀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소장은 이 심주가 후대 어느 시기에 탑을 수리하면서 넣은 것이라고 해도 "애초에 탑을 만들 적에 중심 받침돌인 심초석(心礎石) 위에 나무기둥을 세웠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귀중한 증거"라고 말했다.

고건축 전공자인 배병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벽돌탑에 심주를 넣는 것은 목탑의 형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더불어 심주가 벽돌을 쌓아올릴 때 일종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배 소장에 따르면 심주가 없으면 벽돌로 높이 7m 이상인 벽돌탑을 쌓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 소장은 "심주는 탑 전체 중심을 잡아주기는 하지만 실제 심주에 쏠리는 힘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면서 "그것의 실제 기능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노반을 비롯한 탑 상륜부의 부재를 지탱하는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벽돌탑에도 나무기둥을 넣었다는 사실은 안동시 의뢰로 문화재 보수전문 업체 씨앤티가 보존처리 중인 같은 통일신라시대 벽돌탑인 법흥사터 칠층전탑에서도 뒷받침된다.

이 전탑은 이번 보존처리 과정에서 기단부 남쪽에 마련한 감실에서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나무 기둥을 끼운 구멍이 뚜렷이 드러났다. 이 역시 나무 기둥은 비록 썩어 없어졌지만 심주의 흔적으로 간주된다.

훼손이 극심한 조탑동 오층전탑은 문화재청과 안동시가 7대 3 비율로 예산을 투입해 오는 2016년까지 전면 해체 복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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