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의 효과 내는 규제는 국가와 사회의 투명도와 구성원 정직성과 정비례

안영환 편집위원

인간사회를 규율하는 각종 규제는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규제가 온갖 편법과 탈법을 통한 부패의 온상이 되면, 그 규제는 사회와 국가의 활력을 갉아먹는 독버섯이 된다. 하나 규제가 번잡한 도심 교차로의 신호등처럼 차량의 원활한 흐름을 유도하는 것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게 되면, 그 규제는 사회와 국가에 활력을 불어넣는 활력소가 된다.

시장에서도 신호등과 같은 규칙이 있는가 하면, 개인이 주택에 담을 쌓고 창문에 쇠창살을 덧씌우는 것과 같은 온갖 장벽이 설치돼 있다. 기업의 기술과 영업비밀이 도둑맞지 않도록 보호된다.

덤핑과 같은 부당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 맹수와 가축을 한 우리에서 기를 수 없듯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을 위한 여러 규칙들도 또한 필요하다. 이 같은 규칙과 조치들은 때로는 넘을 수 없는 높은 진입장벽이 돼 기득권만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선진국일수록 신호등과 같은 규제 이외에는 철폐돼 왔다. 그래서 선진국이 된 것이다. 내가 1980년대 중반 스위스에서 근무할 때 당시 모든 수출·입절차를 규율하는 이 나라의 관세법이 17개 조항밖에 안 된 걸 발견하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었다. 구성원들이 비유하자면, 동양의 요순시대에 살던 사람들처럼 정직하지 않으면 이 같은 법체계로 어마어마한 무역 물동량을 규제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이때, 장벽의 효과를 내는 규제의 많고 적음은 그 사회의 투명도와 구성원들의 정직성에 정비례한다는 걸 깨달았다.

안전과 위생에 관한 규제도 우리나라보다 월등하게 적었지만 관련자들의 자율규제가 성숙돼 전혀 문제가 발생치 않았다. 사업자는 사업자대로, 감독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그리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자율적으로 교통법규를 준수하듯이 그렇게 행하면서 산다. 누구도 편법이나 위법에 대한 생각 자체를 안 하니까 사회가 투명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그동안 악덕 업자,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고약한 개인들은 끊임없이 규제 양산의 주역이 돼 왔다. 느슨해진 규제는 다시 강력한 규제로 환원되고, 새 규제가 또한 도입된다. 그 규제는 선량한 다수까지 불필요하게 옥죄게 돼 국가적으로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낭비케 한다. 규제가 약이 되게 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규제가 약이 되면, 병자가 회복 후 약을 더 이상 먹지 않는 것처럼, 규제는 점차 철폐되기 마련이다. 공무원, 정치인, 사업가 및 일반인들의 생각과 행위가 그걸 결정케 된다.

서양에서도 16세기 무역이 성해지고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자, 사회 전반적으로 탐욕이 범람하고 황금의 열풍이 불었었다.

이 같은 사회분위기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개혁운동이 태동하여 서양인들의 정신세계를 개혁했다. '노동의 신성', 다시 말하면 '땀 흘려 일하는 대가로 얻는 돈이 아니면 검은 타락한 돈'이라는 자본주의의 윤리가 확립되어 오늘날과 같은 번영을 이룩해 올 수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눈부신 압축 성장 과정에서 이를 규율할 정신문화를 창조하지 못해왔다. 우리의 정신문화는 더 피폐해져 왔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에서 정신혁명의 싹이 틔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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