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부패는 '밀가루 반죽', 일반적 처방으로 근절 어려워, 뿌리 통째로 뽑는 처방 필요

제갈태일 편집위원

반부패 전쟁의 귀감은 이탈리아의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 운동)'이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비리관련자를 무려 1천여명을 검거했다. 그런 와중에 고위공직자 7명이 자살했고 시민들은 부패공직자를 모두 단두대에 세우라고 거칠게 항의했다. 반부패운동의 국민적 에너지가 모여 이탈리아의 공무원들은 깨끗한 손을 가지게 되었다.

1997년 반부패국제회의(IACC)가 채택한 리마선언도 '부패를 소외계층을 가장 잔인하게 억압하는 범죄'로 규정했다. 이처럼 망국을 부추기는 부패는 반역죄와 함께 가장 경계해야 할 죄악으로 손꼽았다.

김영란법도 공무원이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도 형사처분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어느 국무총리처럼 몇 십억을 받고도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해 무죄가 되어 죄인이 '더 뻔뻔스러운' 모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취지다.

따라서 김영란법은 고강도의 부패방지법이다.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 공식 명칭이다. 실명이 법명이 된 것은 2011년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서 처음 제안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직자의 부패는 '밀가루 반죽'과 같아서 일반적인 처방으로 근절되기 어렵다. 체계적이고 전방위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뿌리를 통째 뽑는 강도여야 한다. 더구나 부패는 '함께(Cor)'와 '파멸하다'(rupt)의 합성어로 그냥 두면 온 나라가 결단나기 때문이다.

국회는 작년 8월, 정부가 제출한 김영란법을 이제껏 방치했었다. 세월호 참사로 공직자 부패척결 여론이 높아지자 뒤늦게 논의에 나섰다.

그동안 국회에서 낮잠을 자던 이 법이 부상한 것도 세월호에 얽힌 민관유착의 부패사슬로 정치권도 미적거릴 명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에서 국회에서 "김영란법을 조속히 통과할 것"을 부탁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관피아(관료+마피아)의 부패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국회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장담한 정치권이 이런 저런 핑계로 후반기 국회로 넘기면서 김영란법의 처리가 무산됐다. 애초부터 국회의원들은 이 법안처리가 달갑지 않았다.

김영란법의 대상자는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교사와 기자까지 포함시키면서 적용 대상자를 확대했다. 법안에 대한 반대 여론을 부추기는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김영란법만큼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법안도 없다. 입만 벙긋하면 국민을 위한다는 국회의원들이 아닌가? 당연히 입법을 서둘러야 했지만 김영란법은 구렁이 담을 넘듯 무산시켰다.

김영란법 외에도 퇴직공직자 취업제한과 대상기관을 확대하는 관피아 방지법인 '공직자윤리법'도 입법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침몰도 김영란법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료들이 이익단체에 재취업해 방패막이로 국법을 농단하고 있으니 그게 '마피아'와 다를 바 없다. 국회의원들은 부패공직자를 단두대에 올리라는 이탈리아의 거센 국민저항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김영란법은 대한민국을 그랜드 디자인할 밑그림이다. '깨끗한 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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