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집 장독대엔

반쯤 익다 떨어진 대추 몇 알이

팔월 열나흘 달빛을

쪼그락 쪼그락 빨아들이고 있었다

 

언제나 속이 차 있던 키 큰 장독들

집나간 마누라 기다리는

옆집 반백의 사내 속같이

훠이훠이 속절없이 비어 있고

 

새끼 옹기들끼리 올망졸망 달 아래 모여 앉아

엄마 기다리며

동자 스님 염주알 굴리듯

까닭없이 대추알만 굴리고 있다

<감상> 기와집, 초가집이 한 부락으로 자리잡았던 옛날 풍경은 아무래도 어른들에게 추억의 공간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수직으로 구성된 아파트에 살면서 장독대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꿈꾸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따금 옛물건 전시장을 찾아가보면 그곳 울타리 주변에 항아리들이 늘비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도 항아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있고, 천도 이상의 고온에서 새로운 항아리는 만들어지고 있다. 모처럼 고향집을 찾은 시인이 알맹이 없는 빈장독대를 바라보는 풍경이 쓸쓸하기 그지없다. (하재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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