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베르티의 '천국의 문'은 평화·위로의 메시지 담아 아름다움은 자연의 이상화

김일광 동화작가

2014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 기념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천국의 문'을 관람하였다. 2시간여 동안 작품과 작가 기베르티의 스토리 앞에서 깊은 떨림을 맛보았다. 15년 전 피렌체에서 가졌던 그때의 느낌과는 또 다른 감흥이었다. 갈등과 분단이라는 우리의 현실 상황속에서 따뜻한 손길처럼 찾아왔기 때문이리라.

로렌조 기베르티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행복한 편은 아니었다. 친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없을 정도로 그는 의붓아버지의 밑에서 자랐다. 의붓아버지에게 금은세공 일을 배웠으며, 일찌감치 가족을 떠나 타지에서 기능공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를 고향, 피렌체로 부른 것은 성요한 세례당 2번째 청동문 제작 공모였다. '천국의 문'은 1425년부터 1452년까지 제작기간만 무려 27년이 걸렸다. 기베르티는 북문과 동문 제작에 48년이라는 전 생애를 바쳤다. 그러나 5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천국의 문'은 숱한 위기를 겪어야 했다. 2차 대전 중에는 폭격과 포화 속에서 이를 지키려는 시민들에 의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도 했으며, 관리 소홀로 황금빛의 도금이 벗겨지기도 했다. 1966년 피렌체 대홍수는 청동판 10개 가운데 6개를 휩쓸어 가기도 했다.

'천국의 문'이 제작되던 당시 피렌체는 대홍수와 흉작 등 자연재해와 유럽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은 페스트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피렌체 정부 지도자들은 신앙의 힘으로 시민들의 찢어진 마음을 모으고, 피폐해진 사회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 처럼 '천국의 문'은 평화와 위로,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피렌체 시민들은 스스로 자기네들의 몸속에 는 '천국의 문'이라는 DNA가 흐른다고 믿고 있다.

바티칸 시국의 명예 프레지던트인 지오반니 라이올라 추기경은 "이번 전시회에 바티칸 교황청이 참여하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 베네딕토 16세 명예교황,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세월호 사건의 비극으로 인한 대한민국 국민의 슬픔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라는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그만큼 오늘날 남북 대치와 전쟁 위협, 사회적 갈등에 빠져있는 우리의 현실 앞에 기베르티의'천국의 문'은 위로와 평화의 메시지로 다가온 것이다.

작품뿐만 아니라 인간 기베르티는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는 "도시의 주요 작품 중 내 손으로 만들거나 디자인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는 말을 했다. 그만큼 다른 작가들을 지원했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데에 관대하고 자유로웠다. 심지어 '천국의 문'을 완성하기 전에 그 작업을 위해 만든 인물상과 모형 등을 다른 곳에서 일하던 화가들과 대성당의 성가대석을 만들던 조각가 루카 델라 로비아에게 먼저 공개했다. 이런 관대함이 그의 예술을 더욱 높은 경지까지 올려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아름다움이란 바로 자연의 이상화라고 했다. 자연의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은 바로 삶에서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지만 실상은 기베르티처럼 그 작품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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