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

저문 날, 저문 언덕에 서면

그대도 못다한 것이 남아 있다

헐벗은 숲속 나무 밑, 둥치 밑에

스산한 바람결 속 한치의 눈물 반짝임으로

마지막인 것처럼, 가랑가랑 비는 내리고

그래도 손에 잡힐 듯

그리운 것이 있다

살아남은 것들이여 부디

절규하라 계절이 다하는 어느 한숨의 끝까지

우리들 사랑노래는 속삭여지지 않는다

기억해다오 어느 외침의 미세한 부활과

절망과 거대와

그리고

어떤 질긴 사랑의 비린 내음새를, 안녕

차디찬 겨울을 앞에 두고 있는 늦가을 비가 내린다. 암담한 세상, 불의에 항거한 선배들의 고통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래도 자유롭다. '살아남은 것들이여 부디/ 절규하라 계절이 다하는 어느 한숨의 끝까지'란 시행에 눈길이 머문다. 그래 그 시절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공감하고, 그들의 외침에 귀를 열며 박수쳤다.(시인 하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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