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손수건였음 좋겠다던

그대 이름을 부르고 부르고

허공 한 복판에 부르다

내재율이 된 눈물샘만 터지는

사랑의 비문

엇갈리지 않았음 좋겠어

란 약속 구겨진 기억은

명치 끝에 매달린 집

묵묵히 흐르는 시간의 배후에

찬바람 긴 하품 토해내듯

켜켜이 쌓인 낙엽 헤집고

그리움 비문이 된 새싹

<감상> 관계란 나 혼자 있음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계는 상대가 있으므로 생기는 삶의 한 양식이며, 애증으로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품 안에 품고 있는 일이다. 낙엽이 떨어지고, 그 낙엽을 자양분으로 새싹은 내년 봄에 그리움의 비문처럼 돋을 것이다. 묵묵히 흐르는 시간의 배후에 우리는 나 아닌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새삼 발견할 때 성숙한다. (시인 하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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