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행사장 얼굴 내밀기 대외적 이미지 치중 지양하고 역할에 충실할 환경 만들어줘야

이재원 시민정치연구소장

쉬는 날 가끔 아이들과 TV를 보면서 요즘 방송은 오락예능프로그램이 대세임을 실감할 때가 많다. 가수, 연기자, 개그맨 그리고 아나운서, 심지어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일반인들까지 출연해서 저마다의 입담을 과시하는 프로그램들이 지상파는 물론이고 케이블방송에서 조차 흔히 볼 수 있다.

TV프로그램 중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한 때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노래하는 가수들이 소위 '말빨'이 아닌 본업인 노래로써 실력을 겨루는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는 물론이고 대중문화평론가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방송프로그램의 가장 큰 성공비결을 '역할에 충실함'으로 꼽는다. 가수가 '나는 가수다'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을 때는 노래할 때 뿐 이다. 대중과 가수가 노래로써 소통할 수 있었기에 그 프로그램이 소위 '대박'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평소 개인적으로 소속된 이런저런 단체모임 행사에 참석하다 보면 어딘지 모를 씁쓸한 느낌이 드는 익숙한(?)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행사장을 찾은 지자체장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모습을 볼 때다. 꼭 참석해야 할 공식행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사말 한마디를 위해서 자리를 빛내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솔직히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민생을 둘러보기 위한 것도, 현장에서의 소통을 위한 것도 아닌, 말 그대로 대외적인 이미지에 치중하는 행사 주최 측의 겉치레에 괜한 들러리를 서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사실인즉 선출직인 지자체장이나 정치인들이야 어차피 표를 의식한 이미지 관리 행보를 일정부분 안 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이들의 초청으로 행사의 격(?)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너무도 정치지향적인 단체 관계자들의 행태는 반드시 지적되어야 마땅하다. 공무를 제대로 수행하기도 바쁜 이들을 무작정 공식 업무 외적인 행사에 초청하는 행위는 사실상 업무시간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선출하는 것 못지않게 뽑힌 이들이 제대로 일을 하게끔 하는 것 역시 우리 유권자들의 또 다른 몫이다.

지자체장 혹은 정치인들 역시, 행사장에 얼굴 내미는 것으로 주민들과 소통한 것이라 여긴다면 크나 큰 착각이다. 앞서 얘기 했듯이 가수는 노래로서, 연기자는 연기로서 일반 대중과 소통할 때 비로써 가수로 혹은 연기자로 인정받는 법이다. 모름지기 지자체장은 지역주민을 위한 정책으로 주민과 소통해야 하고, 정치인이라면 바람직한 의정활동으로 유권자와 소통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는 시장이다' 혹은 '나는 의원이다'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단언컨데 행사장의 들러리 노릇은 선출직 종사자들의 역할이 아니다.

올해도 벌써 11월 말로 접어들었다. 조금 있으면 연말을 맞은 각종 모임행사가 잦을 시기다. 지자체장은 물론이고 시의원 그리고 지역구 의원들의 행사장 나들이 또한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가도 될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가릴 줄 아는 그들의 변별력이 크게 요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권자인 우리는 그들의 변별력에 마냥 기대선 안 된다. 절대 선출직 종사자들의 업무시간을 방해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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