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이별 앞에 사는 인생 내가 가진 무거운 것 버리고 좀 더 따뜻한 인생 살아가자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경주 갈 일이 생겼습니다. 만추를 맞이해 느긋하게 차 한 잔 하자고 한 번 들르라는 고등학교 선배님의 전갈이 왔습니다. 칩거는 아니지만 조용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존경하는 선배님입니다. 나이가 들어, 누군가가 불러주면 고맙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저희 연치가 되면 누구나 그렇게 됩니다. 지난 한 겨울에는 구청마당에 세우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점등을 하는 행사에 불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늦바람(?)이 나서 나이와 분수를 모르고 성가대 활동을 하던 때였습니다. 날씨가 유독 추운 날이었습니다. 이 나이에 이게 무슨 꼴인가도 싶었습니다. 코끝에 고드름이 달릴 지경이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구내식당에서 떡국을 먹으면서 관계자 여러분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면서 행사에 불러주신 것에 깊이 감사했습니다. 지금껏, 기분 좋았던 기억입니다.

살다보면 많은 삶과 죽음을 봅니다. 곡절 많은 삶들도 파란만장(波瀾萬丈)이지만, 우리가 겪는 죽음들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요즘 들어 애도조차 닿지 않는 먼 길로 홀로 떠나는 이들을 자주 봅니다. 특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던 인기인들의 갑작스런 죽음이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예정된 이별'에 대한 평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가 양귀자의 '한계령'이라는 소설이 생각납니다. 주인공은 어릴 적 친구가 야간업소에서 양희은의 '한계령'을 구성지게 부르는 것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세속과 초월, 낮과 밤, 삶과 죽음, 아마 우리 삶이 지닌 양면성들을 하나씩 반추해 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노래를 한 번 읊어봅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세상사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가진 무거운 것들을 미련 없이 내려 놓자는 다짐을 해봅니다.

경주 갈 일을 생각하니 '천마총 가는 길'이라는 소설도 생각이 납니다. 역시 양귀자씨의 작품입니다. 조악하기만 했던 1980년대의 역사를 반영한 소설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짐승의 시간'을 견디고, 경주 대릉원을 찾아서 그 곳에 남아있는 천년의 시간으로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역사적 진실도 진실이었지만, 저에게는 그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천마총 안으로 들어갈 때의 주인공의 심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누구나 없이 그런 느낌을 받는 모양입니다. 저도 똑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뻥뚫린 천마총의 굴문이, 그것의 컴컴한 입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저 검은 통로를 거쳐 무덤 속으로 가기가 겁났다. 마치 단절된 세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검은 입구는 섬뜩하기도 하였다"라는 대목입니다. 죽은 자들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산 자의 심정은 누구에게나 대동소이한 것인 모양입니다. 예정된 이별을 앞에 두고 사는 목숨들, 살아있을 때 좀 더 따뜻하게 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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