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공농성의 시초는 평양 을밀대 지붕위에서의 농성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1년 5월 29일 "우리는 49명 파업단의 임금 감하(減下)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결국 평양의 2천300명 고무공장 직공의 임금 감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써 반대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지붕 위에 사다리를 대놓기만 하면 나는 곧 떨어져 죽을 뿐입니다." 평원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씨의 외침이었다.

한국 노동운동사의 기록적인 사건 가운데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이 있다.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중인 노동자들을 경찰이 강제진압하자 78명의 노조원이 어둠을 틈타 높이 82m의 골리앗 크레인으로 올라가 농성을 벌였다. 강성 노동운동의 대표적 사건인 이 농성은 1990년 4월 28일부터 13일간이나 이어졌다. '다윗과 골리앗', 노조와 기업을 의미하는 것과도 같은 상징적 장소에서의 농성이어서 국민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2008년 크리스마스 이브, 이영도씨와 김순진씨가 울산 현대중공업 소각장 담장을 넘어 100m 굴뚝에 올랐다. 이들은 노조활동 탄압 중단과 부당징계 철회 등을 촉구하며 꼬박 한 달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초콜릿 한쪽과 육포 손가락 반만큼을 하루에 두 번씩 먹으며 한겨울 칼바람에 맞서 농성을 벌였다.

그제는 포항국제컨테이너터미널 크레인에 올라가 시위하던 영일만항항운노조원 2명이 점거 7일 만에 시의원들의 설득으로 농성을 풀고 내려왔다.

경북 칠곡군 석적읍 구미국가산업단지 스타케미칼 공장에는 이 회사 해고자 차광호씨가 45m 높이의 굴뚝에 올라가 지난 5월 27일 이후 오늘까지 185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차씨는 폴리에스테르 원사 제조업체인 스타케미칼이 지난해 1월 폐업하자 '분할매각 중단하고 공장 가동 실시하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농성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은 심오한 까닭이 있어서가 아니다. 지상에서 아무리 외쳐도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행정가들은 물론, 시민들도 이들의 외침에 한 번쯤 귀 기울여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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