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에 들어와 산 빗소리를 들으니
산 밖의 일들이 처마 밑에서 씻긴다
내가 일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일상이 나를 떠나보낸 것이므로
이 비가 아직 나를 머물게 한다
쉼이란 내 몸 가장 부산한 한때가 수신한
거처이지, 여기에 도착해 돌아보면
삶도 어느 생(生)이 꿈꿔온 이역이다
풀들이 갓길로 비켜서고
나무는 그 아래 그늘을 만들어
추억을 덜어간다
이제 어느 길로 갈까
<감상>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내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서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자신의 흔적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자신의 행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은 텅 빈, 그래서 휴식의 시간이기도 하다. '가장 부산한 한때가 수신한 거처'가 쉼이란 시인의 생각 밑으로 따라가다 보니 나 역시 '이제 어느 길로 갈까' 갈림길에 와 있다. (시인 하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