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 배경 두 집안의 가정사로 백성들이 직면한 참혹한 현실 묘사

휴식의 정원대산세계문학총서 125 문학과 지성사 | 바진 지음 | 차현경 옮김

루쉰(魯迅), 라오서(老舍)와 함께 중국 3대 문호로 손꼽히는 작가 바진의 대표작 '휴식의 정원(憩園)'이 새해 첫 '읽을 만한 책'에 포함됐다.

'작품의 최고 경지는 저작(著作)과 생활의 일치'라고 강조했던 작가 바진은 작품에서 일반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통해 현실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사회의 혼란과 부패상을 투영했다.

'휴식의 정원'은 항일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작가가 우연히 저택 '휴식의 정원'에 머물게 되면서 알게 된 대저택의 과거와 현재 주인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바진은 두 집안의 가정사를 통해 봉건 계급사회의 불합리성과 모순을 보여주고, 이것이 야기하는 인격적 타락과 인간성 왜곡 과정을 그렸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소설가 '나'는 우연히 친구 야오궈둥을 만나 그의 저택 '휴식의 정원'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이 '휴식의 정원'에 가끔 나타나 동백꽃을 따 가는 소년이 있다. 궁색해 보이지도 않는데 남의 집에 들어와 집안사람들과 싸우며 꽃을 꺾어 가는 이 소년이 궁금해진다. 알고 보니 이 소년은 '휴식의 정원' 전 주인의 아들이었던 것. 이 소년을 통해 한 봉건 대가족의 역사와, 불합리한 계급 사회에서 기생 인간으로서 살아가던 지주의 몰락에 대해 알게 된다. 친구 야오궈둥 부부와 함께 소년을 도우려던 중, 비록 많이 개화됐으나 근본적으로는 봉건 지주의 삶을 살고 있는 '휴식의 정원'의 현재 주인인 야오궈둥마저 비극적 사건을 겪게 된다.

1904년 봉건 관료의 집에서 태어난 바진은 어려서부터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고 불평등이 판치는 엄격한 신분제도에 대한 강한 저항 의식을 싹 틔웠다. 게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표면적으로는 평화롭고 우애가 넘쳐 보이지만 실상은 증오와 알력과 투쟁이 난무하는 봉건 대가정의 모순과 억압을 몸소 체험하면서 반봉건 사상은 더욱 심화됐고, 이러한 사상은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가 됐다.

'휴식의 정원'의 옛 주인 양멍츠와 현재의 주인인 야오궈둥의 가정을 비교해보면 집의 구조나 계급관계에 큰 변화가 있다. 봉건 대가족의 특징인 대저택이라는 외형은 동일하지만, 아버지 아래 여러 형제가 가정을 이루어 함께 살던 옛 주인 양 씨네와 달리 야오궈둥의 가정은 많이 간소화되고 가족도 부부와 아들로 단출해진다. 또한 봉건 계급사회의 불평등을 상징하던 하인과의 관계도 뚜렷한 변화를 보이는데, 엄격한 신분제도의 주종 관계에서 벗어나 주인이 하인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인간적이고 우호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교수로 재직하고 관직에도 몸담았던 야오궈둥이 결국 노동에 의한 삶이 아닌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 기생하는 안락한 삶을 선택한 것이나 가족 대소사를 가장인 야오궈둥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는 점, 봉건 세력과 타협하는 점,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믿는 금전만능주의 성향 등은 봉건제도의 잔재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바진은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휴식의 정원'의 전 주인인 양멍츠와 현재의 주인인 야오궈둥이 현실의 문제점을 보여준다면, 양멍츠의 아들 한얼과 야오궈둥의 부인 완자오화는 사랑과 용서의 인류애로서 미래의 희망을 보여준다.

완자오화는 "소설가는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라며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주고 눈물 흘리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모든 이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완자오화의 말에는 작품을 통해 불공정한 현실에 희생되는 약자들을 위로해주고 상처받은 영혼을 구제하고 싶어 한 바진의 인도주의적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한얼은 자신의 아버지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걸 이유로 아버지를 포기하는 대신, 관용과 용서를 통해 아버지가 이전의 과오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가족 구성원 간의 상호 사랑을 강조하는 바진의 '집'은 더 이상 폭력과 증오의 대상이 아닌 화해와 용서의 공간이다. 이러한 '집'과 '가족'에 대한 인식은 사랑으로서 가정과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인도주의적 이상이 발현된 것이다.

'휴식의 정원'의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청두를 비롯한 국민정부의 대후방(大後方) 지역은 1938년부터 43년에 이르는 5년여 동안 일본군의 대공습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많은 가옥과 시가지가 파괴됐다. 바진은 '휴식의 정원'을 창작할 당시 일반 백성들이 직면한 참혹하고 혹독한 현실을 직접 보고 체험하면서 느낀 슬픔과 허무의 정서를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했다.

뿐만 아니라 '휴식의 정원'은 앞선 작품에서 보여주던 분노, 항쟁, 투쟁과 같은 청년기 시절의 격정에서 벗어나 인생 문제의 복잡한 경험과 모순된 감정들을 표현하면서 문학성에서도 한 차원 더 향상된 기량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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