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기 세운 파도 속을 전장처럼 누비다가

방심한 어느 결에 그물 속 영어가 되어

그 뉘 죄 대속하듯이

덕정에 걸린 꽁치

 

비늘 옷 벗겨지고 갈비뼈 잘려나도

소리 삼킨 풍경처럼 고요히 흔들리며

풍장을 치르는 모습

활자 없는 경전이다

 

적멸의 시간 속에 가진 습기 다 말리면

박제된 혈맥마다 멎은 생피 다시 돌아

바꾸어 새 목숨 입고

살 오르는 과메기

 

노동의 허리끈 풀며 불 지피는 사내들

주거니 받거니 부딪치는 소주잔에

한바다 펄떡거리던 꿈

맛깔지게 부린다

<감상> 30년 가까이 되었다. 처음 포항에 살면서 과메기를 앞에 두고 그것을 날 것으로 먹어야할지 아니면 연탄불에 구어 달라고 해야할지 망설였다. 소주 한 잔 마시고 미역 줄기에 싸서 초고주장 찍어 한 첨을 먹었던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하지만 이제는 겨울이 오면 으레 과메기를 먹게 되고, 몇 두름 사서 가까운 사람에게 택배로 부치기도 한다. 풍경처럼 고요히 허공에 달려 있던 과메기가 새 생명으로 경전의 말씀처럼 우리 땅을 누비고 있다. (시인 하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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