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 챙겨먹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옛 고향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다. 서울 대학가에 '1인 식당'이 등장했다고 호들갑이다. 이런 게 뉴스거리가 되는 게 뉴스거리다.

90년대 중반 "이제 한국 사람도 혼자 밥 먹을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일본의 한 한국학자가 쓴 책에서 였다. 이 글을 읽고 '아, 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하며 나는 사생활이 들킨 듯 불편했다. 예전부터 우리에겐 혼자 밥 먹는 습관이 부족했다. 최소한 두세 명씩 떼 지어 몰려 다녔다. 때가 되면 으레 옆방을 노크하거나 전화를 해서 반강제로 사람들을 모았다. 도시락 싸오는 사람들을 한심한 듯 쳐다보며 사회성을 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자 밥 먹기를 꺼렸다. 식당에서도 버릇처럼 물어 댔다. "몇 분이세요" 혼자인 경우에는 쑥스러워하며 "혼자인데...죄송해요"라고 우물쭈물. 식당측도 대놓고 재수 없다며 아예 홀로 온 손님은 준비 중을 핑계로 내쫓거나, 1인분은 없다며 2인분 이상의 찌게를 강요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혼자 가면 식당주인이 더 위로해 댔다. "왜 혼자 오셨어요" 왕따 당해서 실연당해서 사회성 없어서 그럴까 걱정되어서 일까. 주변 사람들도 비아냥댔다. "뭐 그리 묵고 살 끼라꼬 청승시럽게 혼자 밥 묵노" 혼자 절대 밥 못 먹던, 홀로 서지 못했던 우리들의 풍속도였다. 이런 우리 습속을 일본인들이 보고 있었다니. 객관화 된 우리 모습 앞에서 섬뜩했다. 대조적으로 일본인들은 추운 겨울이든 이른 아침이든, 벤치에서건 식당에서건 홀로 당당히 앉아 밥을 먹는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다. 80년대 일본에서 머물 때, 홀로 밥 먹는 그들이 내 눈엔 참 처량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은 이미 우리의 오래된 미래였다.

일이 생겨 끼니 시간을 훌쩍 넘기거나 좀 당겨서 할 경우 부득이 혼자 밥 먹어야 할 때, 나는 이제 당당해졌다. 생소하거나 서글프지 않다. 천천히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며 즐겁게 나의 자유로운 시간을 곱씹는다. 밥알 하나하나가 오롯이 내 삶의 맛, 의미가 된다. 고독하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 자유롭고 싶으면 고독하라. 남들과 아무리 즐거워도 홀로 있는 시간보다 더 자유로우랴. 함께 사는 상처를 넘어, 혼자 밥 먹고, 걷고, 생각하고, 글 쓰는 시간을 갖는 '어른다움'에 우리사회도 막 눈 뜨기 시작했다. 누군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먹고 싶은 것을 골라 천천히 씹어가며,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림의 미학을 생각해본다. 혼자 밥 먹을 때만이 자신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하고, 치아 상태를 점검하거나 몸 상태를 체크하며, 각종 음식 맛의 깊이와 주변의 잡음과 애무하는 여유가 생긴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혼자로 남아서/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는 릴케의 '가을날'을 되새겨본다.

만사를 안다는 것은 결국 밥한 그릇 잘 챙겨먹는 일(萬事知, 食一碗) 밥 냄새 솔솔 풍기니 자동으로 밥상머리 가서 앉는 '곧 즉(卽)'자, 뚝딱 밥그릇 다 비우고 얼굴 돌려 일보러 물러나는 '이미 기(旣)'자에는 삶의 알파와 오메가가 들어 있다. 밥 한 그릇 따시게 들 수 있으면 어디든 고향 아니랴. 다행히 누군가와 마주 앉는다면 더 따스해지는 밥 한 그릇될 터이고, 그곳이 바로 밥숟가락 달가닥대던 예전 우리네 '향(鄕)'(=고향)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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