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지조를 쉽게 바꾸는 우리사회 나약한 지식인들 이제는 묵직한 삶 살았으면

▲ 신상형 안동대 교수
지난 주(13일)에 '양철북'의 저자인 귄터 그라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라스는 그저 여러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산 것이 아니라, 치열한 지성인의 태도를 모범적으로 보여준 위인이었다. 쉼 없이 인간의 지성을 일깨우던 그의 모습은 세계인의 가슴 속에 뚜렷하게 각인됐다.

배경으로 볼 때 그라스는 훌륭한 족적을 남길만 한 위인은 아니었다. 발트해 연안의 작은 부두 단치히라는 자유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조그만 채소가게를 운영한 개신교 독일인 아버지와 가톨릭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당시 그곳을 장악한 나치의 영향 하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는 히틀러 청소년단에 가입했고, 자원해 공군 보조병, 전차병 등으로 참전해 포로가 됐다. 특히 1944년에는 SS대원으로 자원해 이듬해 부상을 당하여 미군 포로가 되기까지 그는 나치를 위해 충성을 바쳤다. 1946~7년에는 석공으로 광산에서 일했고, 여러 해 동안 뒤셀도르프에서 조각과 그래픽 등을 공부했다.

이력에서 보듯이, 그라스는 자기의 주어진 평범한 삶을 언제나 아주 진지하게 살았다. 그는 수 십 년간 사회민주당원으로서, 특히 빌리 브란트 시절, 그 정책을 강력히 옹호했다. 1980년대에는 평화운동가가 되어 6개월 간 인도를 방문했다. 통독에 이르는 여러 행사에서는 독일의 지속적 분리를 옹호함으로써 많은 독일인들을 헷갈리게 만들기도 했다. 2001년에는 독일폴란드 미술관의 창설을 제안하고 강탈당한 미술품의 반환을 요구했는데, 몇 몇 나라는 이를 거절했다. 2012년 4월에는 그라스의 시 '말해야 하는 것'이 여러 유럽 신문에 실렸는데, 거기에서 그는 이란인들을 날려버릴 수 있는 이스라엘의 핵탄두 설치를 위한 독일의 후원을 비판했다. 2012년에는 '유럽의 불명예'라는 시에서 유럽의 심장을 이루는 한 나라인 그리스를 가난뱅이로 저주하는 유럽 정책을 그라스는 신랄하게 고발했다.

그라스는 타자를 향해서만 비판의 칼날을 세우지 않았다. 자신의 나치 친위대원 전력을 시인하는가 하면, 잘못된 정치, 사회적 정책에 대해서는 이스라엘도 비판하는 등 정직하게 표현하는 소신을 가진 행동파 지식인이었다. 또 베트남전, 독일통일 사태에 대해서는 다수의 견해에 맞서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로 반 이데올로기적 견해를 피력했다. 이런 독자적이고도 당당한 태도는 정직한 양심에서 우러나는 것으로, 자신감이 없이는 드러낼 수 없는 목소리다. 귄터 그라스의 이런 태도는 특히 그의 노벨상 수상작 '양철북'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이 책에서 성장하지 않는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나치 독일의 어두운 과거를 독특하게 형상화했다. 반어, 역설, 풍자로 가득한 이 책은 독일 전후문학의 기념비적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비롯한 여러 상들을 받게 만들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아이디어를 형상화하는 창작인 판화와 조각가 학도였던 그의 재능이 소설로 전환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에게 닥친 세기적 역경과 거친 세파가 순간순간 그를 안일한 영달로 유혹했겠지만, 파괴적인 일상 속에서도 굳은 의지로 지성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음으로써 지성을 아름답게 꽃피워낸 인간 승리의 모습을 우리는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동시에 그가 지성인들에게 남기는 도전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도 정치적 신조나 학문적 지조를 쉽게 바꾸는 나약한 지식인들이 이제 좀 더 묵직하고 숭고한 지성인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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