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함 기준은 선과 정직 부모의 가장 큰 임무는 자녀를 강직하게 키워야

▲ 윤정대 변호사
4월 어느 날 벚꽃 아래를 거닐었다. 꽃잎 아래 서면 가슴이 먹먹해온다. 뭔가 삶의 본질적인 것과 마주한 것처럼. 아파트 정원 길에 늘어서 있는 나무들, 하얀 목련, 붉은 철쭉, 연보라색 라일락꽃. 내 몸으로 들어오는 대기의 찬 공기들. 이 호흡, 이 순간, 빈 것 같으면서도 그리운 것 같으면서도 세상을 채우는 그 무엇이 내 마음을 휘감는다.

우리 삶의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가. 돈도 사랑도 어쩌면 그 모든 것도 순간들도 저 꽃잎처럼 빛나다가 가엽다가 떨다가 사무치다가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연약하지만 빛나지만 기쁘지만 아쉽게도 저 대지 위에 떨어져 빛을 잃어가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빛나는 꽃의 계절에 한 사람의 자살과 그가 남긴 리스트로 방송과 신문이 시끄럽다. 그의 죽음과 그의 행적은 소란스럽고 우울하고 어둡다. 남은 사람들도 말로 도배를 하고 있지만 그 말조차 소리를 잃은 것처럼 공허하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서 있는가. 거짓을 포장하고 불의를 미화하고 오로지 헛된 권세에 매달리며 삶을 음울한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죽은 그와 산 사람들의 거래를 둘러싸고 나오는 부정한 이야기가 끝없이 나오지만 전혀 새로운 것 없이 진부하다. 우리 사회와 우리 세대가 이미 윤리에 대해 더 이상 말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은 그는 어려서 아버지와 계모로부터 학대를 받고 집을 나와 자수성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할 아버지가 자녀를 윤리적으로 가르치기는커녕 자신의 욕망에만 사로잡혀 비윤리적인 행동을 보이고 자녀를 냉대한 것이다. 그는 세상에 대한 어두운 생각과 인간은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간의 윤리성이나 선량함보다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권력이나 돈이나 세속적인 힘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유대인 랍비 조셉 텔루슈킨은 그의 책 'The Book Of Jewish Values·죽기 전에 한번은 유대인을 만나라'에서 유대인의 자녀 교육은 무엇보다 자녀를 윤리적인 인간으로 키우는 데 있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부모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호레(horeh)가 스승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모레(moreh) 와 연관되듯이 부모의 가장 큰 임무는 자녀를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한다. 유대인은 자녀들에 대한 교육을 무엇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용적인 가르침보다 선하고 정직하게 살도록 가르치는 것을 중시한다. 유대인의 가치는 사람이 세속적으로 성공했는가에 있지 않다. 유대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은 권력이나 직업적인 성공이나 세속적인 부를 쌓는 능력이나 사람들의 인기나 재능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로지 그가 선하고 정직하게 살았는가에 기준을 둔다.

죽은 그는 40년간 휴일과 생일을 빼고 매일 사람들과 조찬모임을 가지고 1천명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연을 맺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어야 했다.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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