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아들, 아버지와 함께 봄비 속 주왕산·주산지 투어 손 꼭 잡은 부자의 모습 감동

▲ 최인서 청송군 문화관광 해설사
해설사 활동 7년 만에 '사람이 감동이 되는 순간'을 처음 만났다.

4월, 청송군으로 찾아온 귀한 손님과 동행투어를 하게 됐다. 주왕산과 주산지를 함께 거닐며 유래와 전설, 자연의 신비로움을 이야기로 전달해 드렸다. 먼 길 벅찬 기대감으로 오셨을 텐데 그날따라 애꿎은 봄비가 진종일 내렸다. 꽃잎은 땅으로 떨어져 수를 놓고, 새순 잎에 매달린 물방울이 영롱한 이슬처럼 예뻤지만 나는 행여 이분들의 발걸음이 무거울까 노심초사하며 빗속을 거닐게 됐다.

이들은 서울에서 오신 25명의 예절학자님들과 다인회 선생님들이셨는데 선뜻 역발상의 호탕함을 보여주셨다. "해설사님 우리는 일부러 일기예보 다 보고 비 내리는 날을 골랐습니다. '화창한날 주왕산이 얼마나 멋있을까?'는 상상할 수 있었고, 오늘은 어쩌면 비가 내려 아무나 볼 수 없는 풍경과 노송들이 뿜어내는 향기도 맡고, 겸사 아주 더 멋진 날이 될 것 같습니다"라며 내심 궂은날이 걱정이었던 저를 위로해 주시는 것이었다.

자신감 넘치게 산행코스며 준비물 설명을 드리고 버스에서 내리려는 순간, 뒷자리에 환한 미소로 바라보시는 오십대 중년남성, 건강하고 깨끗해 보이시는 구순의 어른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언뜻 "용추폭포까지는 거히 두 시간은 소요될 텐데?"하는 염려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읽은 듯 "해설사님, 아무런 걱정 마시고 평소 다니시는 속도로 걸어서 진행하시면 제가 맞춰서 아버님 모시고 움직일게요. 제 등에 비장의 수단이 다 준비돼 있거든요"라며 중년 남성이 웃어 보이셨다. 이미 회원들은 익숙한 일인 양 삼삼오오 움직였고 상가골목을 지나 대전사 마당에 들어섰을 때 이미 자연은 그대로 있을 뿐인데 연신 박수를 치며 여기저기서 감탄을 연발하는 관광객들. 바로 주왕산 9경중의 으뜸인 1경, 기암의 운무가 더 없이 멋진 광경을 뽐내며 장군 같은 자태로 일행을 우러러보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그 중년의 아들이 아버지를 본인의 등에 배낭처럼 메었던 가방을 내려 낙하산을 펴듯 펼치자 어떤 좁은 곳이라도 문제없을 멋진 의자가 완성이 되고, 아버님을 잠시라도 편히 앉아서 쉬게 하시려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 순간, 그 아름다운 부자의 동행을 보고는 눈과 가슴에서 어떤 뜨거운 감동이 일어서 한참 동안 눈물까지 글썽이며 바라다보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질문에 답해 드리면서 어느새 자하교에 도착할 때 쯤, 한손은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또 한손으로는 우산을 씌워 드리는 아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표정으로 등산로 위 의자에 앉아 계시는 아버님 모습이 더 없이 교훈적으로 다가왔다.

주산지 왕버드나무를 끝으로 힘든 기색 하나 내비추지 않고 무사히 산행을 마무리 했을 땐 한 분 한 분 제 손을 잡아 "깊은 인연이었다"며 인사를 나누어 주셨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는 우산 쓰는 것도 잊은 채 관광버스가 시야에서 멀어져 작아 질 때까지 두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돌아오는 길, 꽃잎이 하얗게 떨어져 있는 도로의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아버지 전화번호를 눌렀다. 저 너머에서 '고장난 벽시계'라는 컬러링이 경쾌하게 들려왔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