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유의 책무는 무겁습니다. 직위는 비록 높지 않지만 조정에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 잡으라 권유하고 황제에게 허물이 있으면 틀림없이 간언을 올리며 조정의 득실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만약 폐하의 언동에 무슨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간언을 올리는 것입니다." 당나라 현종 때 대 시인이자 정치가 백낙천이 29세에 과거에 합격, 간언을 담당하는 '습유'벼슬을 제수 받고 황제에게 올린 상주문이다.

상주문에서 밝힌것처럼 백낙천은 황제를 배알할 때마다 정치의 득실에 관해 대담한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악질 관료들의 폐정을 폭로 '관피아' 혁파에 앞장섰다. 회남 절도사 왕박이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 치부한 돈으로 중앙에 올라와 조정의 실세들에게 금전공세를 펼쳤다. 그리고 환관들에게도 뇌물을 바쳐 재상자리를 청탁했다.

이를 안 백낙천은 왕박을 공박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왕박이 재상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재상은 신하된 사람의 최고 자리이며 백성들이 우러러 보기 때문에 덕행도 없고, 공로도 없는 자에게 내려줄 수 없습니다. 왕박은 깨끗한 명망과 두터운 인덕과 큰 공로도 없는데 그에게 재상자리는 천부당만부당합니다. 왕박이 자사로 임직하는 동안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 백성들로부터 착취한 재물을 조정실세들에게 진상했다는 사실은 온 백성이 다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에게 재상자리를 준다면 폐하께서도 왕박의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팔았다는 비난을 들을까봐 걱정됩니다. 각 지방 절도사들도 이 일을 알게 되면 재상이 되기 위해 백성을 벗겨먹는데 혈안이 될 것입니다. 백성들이 어찌 견딜 수 있겠습니까."

백낙천의 추상같은 상소로 왕박의 재상 꿈은 백일몽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 곁에 백낙천같은 직언참모만 있었어도 청문회서 만신창이가 된 이완구의 총리 등용은 좌절됐을지도 모른다.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성완종발 정치참사'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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