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성무 노인회 김천시지회 부지회장
행복은 만인의 소원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예전의 복이란 의미는 대체로 유교의 오복, 즉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살고 덕을 좋아하면서 베풀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 한다고 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오래 산다는 것은 복이 아니고 재앙이다. 독방에서 30~40만원의 기초생활보호급여로 살아가는 독거노인과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맞춤형 결혼, 출산, 육아는 계획 상품처럼 되고 공부시키는데 긍긍하고 있다. 시인 호메로스는 인간은 행복한 사람보다는 불행한 자가 몇 십배 더 많은 것은 잘못된 행복관을 갖고 잘못된 방법으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올바른 행복관을 가져야 한다. 행복은 꼭 돈에 있는 것이 아니요 권력 추구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명예욕의 만족에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행복지수는 베트남보다 못하다. 행복의 요소를 이해 하는데는 '칼 마르스'의 얼마나 소유하는냐 보다 얼마나 풍요로운 인간이 되는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행복할 뿐 아니라 건강한 육체가 전제 되어야 한다. 명언에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말은 공감을 받게 된다. 흔히 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인간의 삶에서 명예, 지위, 돈, 건강, 가족, 등은 행복의 필요한 조건이다. 위의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데 행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탐욕하지 말고 자족하는 마음으로 행복을 창조하는 것이다.

가진 만큼 가지고 누릴 만큼 누리면서 살던 사람이 자살을 하고 우울증에 걸리고 열등감에 빠지고 더 소유 하려다 죄를 짓는 일이 수 없이 보아 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상대적 우월감에서 행복을 찾으려 함은 도리어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행복은 소유의 비교가 아닌 존재의 확인에 있다.

맹자는 "항산( 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맹자는 다시 "선비는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다"고 답변했다. 맹자의 항산이란 말은 행복의 조건이란 말로 바꾸고 항심이란 행복이란 말로 옮겨 놓아도 의미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즉 행복의 조건을 갖추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맹자의 행복론이다.

끝으로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야 행복하다는 명언을 되새기면서 만인이 동시에 공감하는 행복의 정의를 정입 하지 못한 채 행복론을 마무리 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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