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이 아니고 나다 죽을 때까지 눈 부릅뜨고 쿨하게 살다가 떠나자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노래를 들었다.

사랑하는데 외롭단다.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제목에 끌렸는데, 다 듣고 나니 쓸쓸하고, 슬프고, 공허하다. 노래 속의 '난 너무 잘 살고 있어… 인생은 이토록 화려한데'라는 말이 의심스럽다. '…난 너무 잘살고 있어 한데 왜/너무 외롭다 나 눈물이 난다//내 인생은 이토록 화려한데/고독이 온다 넌 나에게 묻는다/너는 이 순간 진짜 행복 하니…사랑이 뭘까 난 그게 참 궁금해/사랑하면서 난 또 외롭다/사는 게 뭘까 왜 이렇게 외롭니' 빼먹었지만, 노래 제일 앞부분은 이렇다.'운동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주말엔 영화도 챙겨보곤 해/서점에 들러 책 속에 빠져서/낯선 세상에 가슴 설레지//이런 인생 정말 괜찮아 보여…' 운동, 일, 여가 취미 생활, 독서로 세상에 충실히 다가서지만, 이 풍요, 괜찮은 생활, 화려한 스펙의 끝이 결국 '사는 게 뭘까, 왜 이렇게 외롭니'라는 고백에 당도하고 만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기성세대, 우리사회가 여태껏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물려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돈인가. 명예인가. 꿈·희망 같은 것인가. 안전한 삶인가. 풍요로움인가. 지성인가. 각자 당당한 자신의 행복한 삶의 추구인가. 물어봐도 자신이 없다. 뾰족한 답이 없다. 막막하고, 더 먹먹해진다. 한 마디로 젊은 세대들에게 내 자식들에게 참 "미안하다" 국가가, 사회가, 학교가, 교사가, 부모가 시키는 대로 충직하게 살아온 젊은이들. 그들에게 우리는 그렇게 투자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느끼는 것은 쓸쓸함, 슬픔, 공허함뿐. 그들에게 남은 것이 결국 실직과 상실감뿐인가. 게다가 지금 늘어만 가는 비혼(非婚). 학령인구 감소로 줄어드는 학교와 교사들과 서적들. 젊은이들은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 자식들의 교육비가 막막할 것이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기에 눈앞에 훤히 고생보따리가 보이기 때문이리라. 누구에게 무슨 명분으로 결혼하라 하고, 또 자식 키우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 희생 봉사하라고 강요할 것인가. 노인들은 또 어떤가. 무연사회(無緣社會) 속에서 서성인다. 무연고의 독거노인, 늘어가는 무연고 죽음과 묘지, 중년 이후 무연고의 고독, 사랑, 성(性) 그리고 쓸쓸함. 수명은 길어지는데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어디까지 나는 나를 책임질 수 있는가. 돌아보면 과제만 수북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나는 나로서 살아 남아야 한다. 나는 남이 아니고 나다. 죽기 전까지 끝까지 눈알을 부릅뜨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똑바로 쳐다보며, 내 삶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걸어가야 한다. 남이 내 삶을 대신 살아줄 리 없다. 어차피 태어난 이상 당당하게 살다 웃으며 떠나야 한다. 각자 쿨 하게 살다 가는 사생관(死生觀)을 가져야 할 때다. 길은 험하다. 꾸부러지고 움푹 패이고 때론 뚝 끊겨 있기도 하다. 그럴수록 스스로의 관점과 전망을 가져야 한다. 가치관과 세계관은 사회가 공짜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스스로 배우고 터득해야 한다. 내 운명을 신에게도 내맡기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 간다는 '조명(造命)'을 선언한 사람들이 있다. 팔자를 자기 손으로 뜯어 고치고 수리하려 했던 용기 있는 자들이다. 이쯤에서 다음 구절을 떠올리자. "분투하고, 추구하고, 발견하고, 결코 굴하지 않으리니!"(To strive, to seek, to find, and not to y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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