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특별가석방 출소…1989년부터 성공회대학서 2006년 정년퇴임 후에도 석좌교수 재직 25년간 강의 현대사회의 모습 결합 현재의 문맥으로 새롭게 해석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돌베개|신영복 지음
매주 목요일 오후 8시면 어김없이 강의실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이곳은 성공회대학의 한 강의실. 서울 한복판도 아니고 부천시에 인접한, 변방(邊方)의 조그만 대학 강의실이 수강생들로 북적인다. 수강생들 중에는 성공회대학의 학생들도 있지만, 나이 지긋한 청강생들이 제법 많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보험회사·은행·일반 회사 등에 다니는 직장인들.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든 이곳은 신영복 선생의 강의실이다.

선생의 강의는 여럿이 함께 가는 여행과도 같다. 가을에 시작되어 늦가을을 관통하고 초겨울 눈이 내리는 날까지 진행된 긴 여정의 마지막 날이면, 선생은 수강생들 모두를 데리고 나목이 된 느티나무 아래로 간다. 그리고 각자 아름다운 별 하나를 가지 끝에 달아보라고 한다. 영원히 함께할 순 없지만, 앞으로 펼쳐질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긴 항로에 북극성처럼 반짝여줄 별 하나를 마음에 달라는 의미가 아닐까.

선생은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이후, 그 이듬해인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에서 강의를 하였고, 2006년 정년퇴임 후에도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강의를 계속했다. 거의 25년간 대학 강의를 한 셈이다.

이 책은 저자의 성공회대학 강의를 녹취한 원고를 저본으로 한다. 선생의 강의는 총 3번에 걸쳐 녹취가 이루어졌다. 사전에 선생의 동의 없이 진행됐고, 학생들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녹취한 것이었다.

2004년에 출간된 '강의'에 이어 신작'담론'에서도 선생은 동양고전 독법(讀法)을 통해 '관계론'의 사유로 세계를 인식한다. 동양고전을 공부의 텍스트로 선택한 이유는 동양고전이 갖고 있는 풍부한 사상들이 세계 인식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동양고전에 담긴 사상들은 무엇보다 인간을 중심에 둔다. 여기서 인간 중심이란 인간을 배타적 존재로 상정하거나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두는 인본주의가 아님은 물론이다. 동양 사상에서 인간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하나이며, 그 자체가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이기도 하다. 동양 사상이 갖고 있는 조화와 균형감, 그리고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뛰어난 관점은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유연한 틀이 된다.

선생은 고전을 현재의 맥락에서, 오늘날의 과제와 연결해서 읽는다. 물론 이러한 독법이 실증주의자들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방법이겠지만, 선생의 생각은 다르다. 모든 고전은 과거와 현재가 넘나드는 곳이며, 실제와 상상력, 현실과 이상이 넘나드는 역동적 공간이어야 한다. 유가(儒家)의 발전사관, 진(進)의 신념도 현대의 금융자본이 갖고 있는 자본축적 양식이 과연 지속가능한가라는 관점에서 재조명 돼야 한다.

이처럼 이 책에서 다뤄지는 동양고전은 축자(逐字) 해석이나 자구의 의미에 매달리지 않고, 현재 우리 사회의 여러 양태들과 결합되어 현재의 문맥으로 새롭게 읽힌다. 모든 텍스트는 새롭게 읽혀야 한다는 것이 선생의 생각이다. 또한 선생이 겪은 다양한 일화들, 생활 속에서 겪은 소소한 일상들을 함께 들려줌으로써 동양고전의 현대적 맥락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책은 '강의' 이후 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훨씬 깊어진 논의와 풍부한 예화를 담아낸 동양고전 독법의 결정본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