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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가시에 찔려 죽고 싶다

명성도 美도 허망한 것 언어의 가시 걷어내고 자신만의 언어 가꿔야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등록일 2015년12월17일 22시01분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사랑합니다. 고객님∼'. 여기저기 귀에 쏙쏙 드는 달콤한 말 천지이다. 듣기 좋은 말에 생각도 달콤하다. 그곳이 낙원이다. 아름다운 언어는 우리를 별세계로 안내한다. 내면 깊은 곳의 미적 영성을 만나게 한다. 피안은 결코 이 땅을 벗어나 있지 않다. 말 한 마디에도 도피안(到彼岸)이다. 언어가 아름다운만큼 내면의 미적 영토가 현현한다.

언어를 갈고 다듬는 일은 시인 문학가만의 일은 아니다.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 자신만의 언어를 가꿀 수 있다. 자신만의 세계를 확보하는 일이다. 거기에 자신의 영혼을 단단히 정박시킬 수 있다. 기대고 머물 안식처이자 항구이다. 장미 꽃잎 같은 언어. 그 넝쿨은 자신의 내면을 넘어 얼굴에서 만발한다. 그 가시에 찔려 죽어가는 일은 얼마나 황홀할까. 한 여인에게 장미꽃을 꺾어주다가 진짜 장미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 릴케. 그의 책들을 읽는다. 51세로 마감한 그는 여행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었다. 연인 루 살로메에게 '말에서 내팽개쳐진 채 안장에 매달려 떠나온' 사람 같았다고, 자신이 이집트 여행 중이었음을 애써 알린다. 1910년 말에서 1911년 초까지 대략 네 달 반 정도의 이집트 여행. '동방적'인 것을 통해서 서구인인 자신을 성찰한다. 적당한 '거리'에서 다양한 문화에 눈뜬다. '에크나톤 태양의 노래'에서 말한다. '각자는 자신의 소유를 가지고 있고,/그들의 명은 정해져 있다./그들의 혀는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고,/그들의 모습과 피부색도 서로 다르다./그렇다, 너는 인간들을 구분해놓았다.'('모든 창조') '수많은 눈꺼풀 아래', 표면이 아니라 겹겹 검붉은 이파리에 쌓여 깊은 곳에 숨은 '누구의 잠도 아닌 즐거움'을 그는 묘비명에 적었다. "…아 순수한 모순이여…그토록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을. 아름다운 언어의 손길로, 세상의 순수한 몸짓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였다. 미적 안목의 글쓰기-말하기로 절정에 당도하려는 것이다. 릴케가 쓴 '로댕'의 첫 구절이다. "명성을 얻기 전 로댕은 고독했다. 그러고 나서 찾아온 명성은 아마도 그를 더 고독하게 했을 것이다. 명성이란 결국 하나의 새로운 이름 주위로 몰려드는 모든 오해들의 총합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그의 언어에 감동한다. 그렇지! 명성이란 결국 '새로운 이름 주위로 몰려드는 모든 오해들의 총합'이잖아! 릴케는 말을 더 보탠다. "…평원이나 바다를 무엇이라 명명할 수 없듯이, 이름 없는 것…지도에서나 책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나 이름을 갖는 바다가 실제로는 그저 넓음이요, 움직임이며, 깊음일 뿐인 것처럼" 우리들의 언어가 허망하듯, 명성도 아름다움도 결국은 허망한 것이다. '금강경'에서 "나(여래)를 형상이나 소리나 색깔로 만나려는 자는 이단"이라고 몰아붙이듯. 언어가 지시하는 영토는 끝내 지상에는 없다.

장미 꽃잎의 눈꺼풀에서 돋는 언어의 가시를 생각해본다. "지는 꽃잎이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나는 그 눈동자 앞에, 아무 까닭도 없이 서 있고/까닭도 없이 운다/지옥과 천국, 그 어디에서도 가질 수 없는/아픔과 기쁨이/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고요 속에서 그저 눈을 껌뻑거리고 있다"고. 수많은 사람과 사물을 어루만지는 '손'이자 '혀'인 언어. 그 아름다운 가시에 찔려 죽어갔으면 한다. 험한 세상 험악한 음성뿐이니, 그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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