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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 死線 넘어 사회인이 된 천안함 생존자 전환수씨

제1회 서해 수호의 날 기획…"국가가 다시 부른다면 천안함 승조원 되겠다"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등록일 2016년03월24일 22시22분  
▲ 지난해 12월 수협중앙회 공제보험부 직원이 된 천안함 생존자 전환수씨가 제1회 서해수호의 날을 하루 앞둔 24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다.
2010년 3월 26일 밤 대한민국 해군의 PCC-772급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했다.

백령도 남방 2.5㎞ 지점에서 104명의 승조원을 태우고 경계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 해군 잠수정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

해군 장병 40명이 죽고 6명이 실종됐다. 6년이 지난 지금 58명의 살아남은 자는 생존의 기쁨보다는 씁쓸하기만 한 '3월 앓이'를 되풀이한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마침 정부는 천안함 피격과 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도발 등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3월 마지막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정했고, 25일 첫 행사를 마련했다.

대구 출신의 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자 전환수(28)씨는 "다시 국가가 부른다면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면서 "국민을 지킨 군인들을 꼭 기억해 달라"고 했다.

분지(盆地) 대구에서 자랐지만 바다를 사랑했기에 바다사나이를 택했던 그는 3월26일이면 몸살을 앓는다.

6년 전 해군 입대 2개월짜리 신병이었던 그는 3명의 동기와 천안함을 타고 훈련에 나섰다가 수제비로 야식을 먹고 빨래하던 중 봉변을 당했다. 어뢰 공격을 받은 배가 침몰한 것이다.

함수부에 있던 그들은 간신히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지만, 함미부에 있던 동기 한 명은 세상을 떠났다.

배가 기울어지는 과정에서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 인대가 끊어지는 상처를 입은 그는 "사고 후 두 동강이 난 천안함의 모습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함정 후미에서 숨져간 전우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천안함 생존자 전환수씨는 이제 바다사나이가 아니다.

서울 송파구 오금로에 있는 수협중앙회 공제보험부 직원이다. 수협보험과 관련해 계약 정리 업무를 배우느라 열심 그 자체다.

부경대학교 해양산업경영학과 졸업을 2개월 앞둔 지난해 12월에 취직했다.

항해사의 꿈을 접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을 찾은 끝에 선택한 곳이다. 그는 "돈과 명예를 마음속에서 지웠다"고 했다.

입대 전까지는 제2연평해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전씨는 "정부가 서해수호의 날을 만들어 희생 장병들을 기려주니 고맙고 눈물이 난다"고 털어놨다.

천안함 46용사와 달리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침묵해야 했던 지난날을 되새기던 그는 "작정하고 쏜 어뢰는 초계함 한척으로 피하고 대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위험을 알고도 목숨 바쳐 국민을 지켰다는 자부심만큼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전씨는 천안함 생존자라는 이유로 손해를 보면 봤지 크게 덕을 보지는 못했다.

폭침 사건 이후 손가락 치료 과정에서 상관, 동료 사병과의 마찰로 부대를 옮겨야 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오롯이 홀로 버텨내야 했다.

단 하나, 오른손 손가락 상처 덕분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고, 수협중앙회 취업 때 유공자 가산점을 받았다는 게 위안이다.

전씨는 "손가락이라도 다쳤으니 유공자가 될 수 있었다. 몸에 그날의 흔적이 없는 장병들은 심각한 정신적 장애와 마음의 상처를 앓으면서도 제대로 된 예우나 혜택을 받지 못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선(死線)을 넘어 국가에 충성했던 이들에게 다소 야박한 대접이란 것이다.

적은 돈이지만 개발도상국의 상처받은 아이들을 돕고 있다는 전씨는 앞으로 더 큰 나눔을 실천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을 겪은 이후 수많은 피와 땀을 흘려 희생으로 가꾼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는 그는 서해수호의 날이 점점 잊혀 가는 천안함 폭침 희생 장병들의 희생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전씨가 작정하고 쏟아낸 사자후(獅子吼)는 이렇다.

"영화로 만들어 주목받은 제2연평해전과 달리 천안함 이야기가 영화화 된다는 걸 기대조차 않습니다. 온갖 억지와 말도 안 되는 의혹을 덕지덕지 붙여 만든 이상한 다큐멘터리나 나오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국민을 위해 애쓴 희생 장병들을 생각해서라도 진실을 왜곡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고 이후 엔진소리만 나도 크게 놀라지만 그 때문에 매사 조심성이 많아져 다행이라던 전환수씨는 "나라의 부름이 있다면 다시 천안함 승조원이 될 거다.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우렁차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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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수 기자

    • 배준수 기자
  • 법조, 경찰, 대학, 유통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