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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탐사취재 - 6.문무왕의 얼이 녹아있는 '감포'

[경북 동해안 1천리를 가다] 감포 해안길 33㎞ 따라 숨쉬는 신라 천년 수중역사

양병환기자,조준호기자 등록일 2016년04월13일 21시35분  
▲ 감포 문무대왕암 항공 촬영.
동해안을 끼고 있는 경상북도 지자체 중 해안 면적이 가장 작은 지자체는 경주시다. 경주시 해안 길이는 약 33㎞로 해안선 따라 돌면 약 44.51㎞이다. 동해안 유일 도서 지자체이며 미니 지자체인 울릉군의 해안선 64㎞의 비해 절반가량이다.

하지만 경주시의 해양은 동해를 호령한 통일신라왕국의 교두보였다. 우산국까지 정벌한 동해의 찬란한 역사의 중심역할이 바로 감포부터 시작됐다. 이 중 문무대왕암은 감은사지, 이견대, 낭산, 대종천 등은 서로 이어지는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다.

대종천은 이전 동해천(東海川)이라 불렸다. 동해안에서 동해라는 지명을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하천이 감포에 자리 잡고 있다. 또 1895년에는 대왕암의 주변지역인 양북·감포지역을 경주군 동해면(東海面)이라 칭하기도 했다.

토함산에서 발원해 함월산의 물줄기가 합수돼 지방도로 929번을 따라 동해로 이어주는 동해천이 대종천이라고 이름 붙여진 데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주민들은 "몽고족들이 황룡사 대종을 배에 싣고 가려다 문무대왕님이 노해 갑자기 폭풍이 일어 배가 통째로 바닷속에 가라앉았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일 때문인지 파도가 거세게 치거나 하면 바닷속에서 종소리가 난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때 일본은 종과 함께 문화재를 약탈하다가 강을 벗어나자 풍랑으로 인해 감포 앞바다에 가라앉았다는 설도 있다. 모두 문무대왕의 은덕으로 이야기한다.

수년 전 지역의 잠수부가 수중에서 몇 개의 종을 본 후 언론에 알려졌다. 이후 수차례 탐사작업까지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또, 일부 주민은 마을 앞에 큰 강이 흐르면 큰 도랑, 큰 거랑이라 불렀다고 한다. 대천(大川)으로도 불리다가 종(鐘)자를 넣어 대종천으로 했다고도 한다.

분명 중요한 것은 일제시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해천이라는 지명이 빠지고 대종천으로 등록이 된 것이다. 삼국사기 문무왕조편을 보면 '문무왕(文武王)이 동해구(東海口)의 대석위에 장사를 지냈으며 속전에는 왕이 용으로 변했다'는 기록이 있다. 역사적으로 통일신라 때는 분명 우리의 바다 동해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 감포항 주변 암반의 갯녹음 현장이 회복되고 있다.

신라시대에 감포는 동해의 시작이었고 중심이었다. 우측으로 국제어항인 울산을 비롯해 좌측에는 영일만을 끼고, 먼 거리 아라비아 상인과 왕족들이 동해를 거쳐 동해천을 타고 경주로 오갔다.

경주시도 수년 전부터 이런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문무왕을 연결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또, 감포항을 연안항으로 승격해 여객선 유치 등으로 또다시 해양 지자체로 발전을 모색 중이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우선 대종천부터 동해천으로 지명을 바꾸는데서 시작해야 할듯하다. 동해는 신라의 바다였고 신라의 중심인 경주를 국제적인 문명교류로 이어주는 바다가 동해였기 때문이다.

경주의 중심항이며 동해로 이어주는 감포. 감포를 중심으로 해양을 둘러보자.

대종천(동해천)이 동해와 만나는 해상. 좌측의 이견대와 우측으로는 대왕암이 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려는 문무대왕의 사후 쉼터다.

문무왕은 통일신라를 만든 주역이었다. 신라 제30대 왕이며 이름은 김법민(金法敏), 신라 김유신의 여동생인 문희가 낳은 김춘추의 아들이 바로 문무왕이다. 아버지인 무열왕은 백제를 멸망시킨 왕이었고, 외삼촌인 김유신은 고구려를 통합한 핵심인물이었다. 즉위한 문무왕은 당나라 잔당을 몰아내고 명실공히 삼국을 통일한 왕이었다.

우리나라 귀한 문화재가 산재된 문화재의 도시 경주시. 이 중 왕릉으로 국내 유일하게 화장 후 수중에 안치된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해상의 대왕암. 사적 제158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지만 수중은 모습은 삼국을 일통한 기상과 죽어서도 용이 돼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정신이 투철한 왕으로 평가받는 문무왕의 왕의 사후 쉼터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각종 쓰레기 천지였다.
▲ 감포항 수중 해조류.

경북일보는 문무왕의 전설을 간직한 봉길리 앞 200m 해상에 있는 대왕암 수중을 탐사 취재했었다. 올해 동해안 탐사취재를 시작하면서 동해의 지명과 호국의 성지로 알려진 문무왕의 전설이 간직한 대왕암을 처음으로 조명키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독자들이 쉽게 접하지 못한 대왕암 주변을 입체적으로 항공 및 수중 비경을 담았다. 문무왕 대왕암은 문화재로 관리, 통제되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돼 내심으로 기대도 많이 했다.

하지만 1m도 안된 시야 사이로 보이는 대왕암 주변 수중은 온통 쓰레기가 널 부러진 모습뿐이었다. 마치 고물상을 찾은 기분이었다. 작은 암반이 그대로 수중 바닥까지 이어진 대왕암을 중심으로 10개 암초 사이에는 수십개의 호스 파이프를 비롯해 폐통발, 타이어, 폐목재, 플라스틱류 등이 암반 바닥에 둘러 쌓여 있었다.

그리고, 한복처럼 보이는 옷가지와 굿 등에 사용된 천가지 등도 널브러져 있다. 문화유산으로 통제, 관리되고 있는 곳의 모습이다.

한 해양학자(48·포항시)는 "문무왕 인근지역 지역 수중에도 수년전부터 무속인들이 굿, 제 등에 사용하는 깃발류, 옷가지 등이 심심찮게 목격된다"고 밝혔다.

해안에서 버려진 쓰레기 등이 파도에 밀리거나 지역 어민들의 폐어구가 장기간 쌓인 것으로 추측된다. 호국의 성지로 알려진 문무왕의 흔적이 담긴 대왕암 수중의 모습에 안타까웠다. 관계당국이 허가만 해주면 다시 찾아 처리하고 싶은 생각이 자꾸 머리에 맴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경주시의 해양생태는 인근 지역보다 상당히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다의 사막화의 척도인 백화현상(갯녹음 현상)에 대해서는 경주시가 인근 포항시나 울산시에 비해 보전돼있다.

수산자원관리공단의 지난해 갯녹음 조사 자료에 의하면 동해전체 전체 면적 중 정상 상태인 38%, 진행 26%, 심각 35.6% 이었다. 평균치보다 경주시는 정상면적이 39.4%로 웃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백화가 진행 중인 지역은 34%, 심각한 지역은 26%에 그쳤다. 인근 포항시는 갯녹음 현상이 심각한 곳이 64%, 울산시 46.5%였다. 방치하면 옆 지역과 동일하게 갯녹음이 확산될 수 있다. 이 자료는 동해지역 강원도 고성군 해안부터 울산 해안까지를 분석한 자료였다.

경주 해양을 둘러보고 확신이 들었다. 좋은 생태환경을 육성하고 가꾸면 분명 작지만 아름다운 어촌을 부촌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호국의 역사적 가치를 담은 유적, 그리고 이어져 있는 이야기, 아름다운 해안과 동해안에서 가장 아기자기하고 풍광이 아름다운 송대말 등대도 자리잡고 있다.

송대말 등대는 감은사지 3층 석탑을 형상화 한 등대로 문화관광체육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이다. 이 곳 지역에 만든 최초 등대를 비롯해 등대 변화를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다.

포항의 호미곶 및 울산의 울기등대 웅장함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안 절경와 우측 감포항과 어우러진 풍광은 압권이다.

특히 야간에는 오징어잡이 어선에서 뿜어낸 어화와 감포항 주변 불빛이 만든 풍광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방문한 탐방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엄청나다.

송대말 등대 내에는 일제시대 건설된 등대터를 비롯해 이후 변화된 등대가 모두 모여 있어 한눈에 등대 변천사를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근 감포항은 일제시대인 1920년대 개항 후 구룡포항과 방어진항과 함께 성장한 항이다. 경주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감포항을 중심으로 개발을 준비 중에 있다. 역사가 묻어있는 동해의 시작을 알리는 항으로 도약하길 기대한다.

이와 함께 동해바다 감포로 이어주는 도로 또한 매력이 넘친다. 포항에서 구룡포, 호미곶을 경유하는 해안도로는 바다가 만든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기 좋은 드라이브코스다.
▲ 대왕암 수중에 부서진 폐통발이 해조류를 손상시키고 있다.


또, 경주에서 추령을 넘어 대종천을 따라 감은사를 거쳐 가는 길, 929번 지방도로는 또다른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이전에 큰 강이 존재했다는 가정을 가지고 보면 더욱 색다르다.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중 동해천(대종천) 주변은 호국대룡 문무왕의 간절한 염원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자동차로 불과 3, 40여 분간을 달리는 짧은 거리지만 이 길에는 강과 들판의 만든 형형색색의 모습과 곳곳에 위치한 문화재가 어우러진 천년역사가 녹아있는 도로다. 이 길 주변 곳곳은 신라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 더욱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 감포 송대말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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