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동해바다 누비는 고래의 즐거움 엿보며 안분지족

▲ 영덕군이 목은 이색 선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성대산 정상에 건립한 관어대. 북쪽으로는 후포, 남쪽으로는 호미곶, 서쪽으로는 병곡평야 등 바다, 강, 평야와 산 그리고 사람사는 도심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장자와 혜자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사안과 사물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 사사건건 시비를 벌였다. '장자 내편 소요유'에 소개되는 '가죽나무' 이야기도 그렇고 '박씨'를 놓고 벌인 논쟁에서도 두 철학자는 애들처럼 다툰다.

대표적 논쟁이 '물고기의 즐거움(知魚之樂)'이다. '추수'편에 나온다. 장자와 혜자가 호수 위 다리를 거닐면서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았다.

장자가 "물고기가 놀고 있군. 저게 물고기의 즐거움이지(魚之樂)"라고 말했다. 그냥 넘어가면 혜자가 아니다. 장자에게 늘 면박만 당하던 혜자가 즉각 말꼬리를 잡고 반격에 나섰다.

"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는가?(知魚知樂)"

장자가 다시 반격했다 "그대는 내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 하는가?"

한반도의 식자들은 이들이 물고기를 놓고 벌인 논쟁을 가슴에 오래 담았다.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분지족의 미로 여겼고 어약연비하며 자연의 결대로 사는 삶을 행복의 아이콘으로 정했다. 물고기를 바라보며(관어) 장자와 혜자의 경지에 도달하기를 바랐으며 그 달관의 경지에서 도를 즐기고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관어의 역사는 '춘추좌씨전'에 기록될 만큼 유구하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관어는 귀족층의 오락의 일종이 됐다.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에는 예종이 대동강에 가서 배를 타고 물고기를 구경했다고 했으며 우왕이 비와 우박이 내리는 날인 데도 불구하고 물고기를 보다가 발가벗고 물에 들어가서 고기잡이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관어'는 주로 '대(臺)'에 붙는 이름이다. '대'는 일반적으로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관조하는 누대를 말하기도 하고 절벽 바위를 이르기도 한다. 계곡의 평평한 바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건축물로는 충북 영동의 관어대가 대표적이고 높은 절벽 위 바위를 이름하는 곳은 의성 안계면 교촌리의 관어대와 정선의 관어대, 영해 괴시2리 상대산 관어대가 대표적이다. 회재 이언적은 경주 안강에 독락당을 지으면서 주변의 4개의 산과 5개의 바위를 묶어 '사산오대'라 이름했는데 그 바위 중 하나가 물고기 뛰노는 계곡에 있는 '관어대'이다.
▲ 절벽아래 송천이 상대산을 벨트처럼 감싸 안고 흐르다 대천해수욕장으로 흘러드는 풍경이 장관이다.

영덕군 영해읍 괴시2리 있는 관어대는 해발 183m 상대산 꼭대기에 있다. 포항쪽에서 영해읍으로 들어간 뒤 영해시장을 지나 대진교회에서 발길을 우선 멈추면 된다. 대진교회 길 건너편 대나무숲을 갈라 진입로를 만들었다. 산길로 접어드는 등산로의 시작이다. 평범한 산길이다. 20분 정도 걸어 정상에 도착한다.

이 산에는 관어대가 두 군데 있다. 산 정상에 있는 관어대는 영덕군이 목은 이색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준공한 건축물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정면에서 보면 병곡들판과 영덕읍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를 돌아 동쪽을 보면 일망무제 동해바다가 발아래 펼쳐진다. 발아래는 대진해수욕장이, 멀리 북동쪽으로는 고래불 해수욕장이 눈부시게 푸르다. 푸른바다를 등지고 소나무 정기받은 강과 드넓은 들판을 마주하는 명승지다.

상대산은 조선초기 성황당산이라 불렸다. 영해부의 사록으로 온 우탁이라는 사람이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서 준동하던 팔령신을 붙잡아 동해에 빠뜨려 죽였다는 설화가 있는데 이들을 제사지내던 성황사가 산 밑에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산은 산 이름 자체를 관어대라고 부르기도 하고 산과 괴산2리 전체를 관어대라고 하기도 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여러 지도에서 일관되게 상대산을 관어대라고 적고 있다.

옛어른들이 수백년 동안 관어대라고 불렀던 진짜 관어대는 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절벽이다. 절벽아래 송천이 상대산을 벨트처럼 감싸 안고 흐르다 대천해수욕장으로 흘러드는 풍경이 장관이다. 바다는 눈이 부시게 푸른 쪽빛인데 파도치는 소리가 산꼭대기까지 상쾌하게 들려온다. 북쪽으로는 울진 후포, 남쪽으로는 포항 호미곶이, 서쪽으로는 병곡평야와 영덕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와 강, 평야와 산, 사람사는 도심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장관을 관어대에서 펼쳐진다.

대한민국 도처에 흩어져 있는 관어대와는 스케일이 다르다. 해발 183m산에서 고래를 본 이야기를 시로 담았다. 권상길은 관어대에 올라 눈부신 경관 12개를 선정하고 시로 읊었다. 붉은 바위는 '단구암'으로 백로가 날아다니는 섬은 '백구도'로 용두봉에 지는 해를 보면서 '용두낙조'라고 지었다.

고래불 해수욕장 앞바다는 고래가 뛰놀던 곳이라고 한다. 권상길은 관어대에서 고래를 보았던 것일까? 그는 관어대에서 본 12경 중의 하나로 장경분설(큰고래가 눈을 내 뿜네)이라는 시를 썼다.



고래가 큰 골에서 숨을 내뿜으니 / 옥같은 파도가 층층이 일어 산같이 높은데 / 맑은 날의 부
▲ 글·사진 김동완 자유기고가
상에 비가 내리고 / 푸른 하늘 갈석산 에는 우레가 치네 / 하늘과 땅을 흔연히 진탕시키고 / 산악도 급히 무너지게 하면서/ 시험하려는 듯 높은 대를 향하여 / 바람과 파도는 만리를 달려오는 구나



영덕군이 12경을 잘 발굴해 영덕블루로드와 연결했으면 좋겠다. 지난해 준공한 관어대 건물 외에도 기왕의 관어대 자리에도 표지석을 놓고 시와 부를 전시해 산을 찾는 이들이 옛어른들의 문학적 향기와 흥취를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 이색이 태어난 무가정터 옆에 지은 기념관.



■ 가볼만한 곳 - 이색 기념관

외가댁은 적막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데

풍경은 예로부터 사람들 입에 올랐었네

동녘바다 떠오르는 해를 보려 하니

갑자기 슬퍼 두눈이 먼저 캄캄해지누나

-영해동쪽 바다 해돋이 중에서



이색 기념관은 관어대 산자락에서 차로 2분 거리에 있다. 영양남씨 집성촌인 괴시 전통마을 제일 높은 곳, 이색이 태어났던 무가정터 옆에 있다. 무가정은 이색의 외가다.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시대 '삼은'으로 불리는 이색은 때문에 괴시리와 관련된 글을 많이 남겼다.

이색 기념관은 작은 공원으로 꾸몄다. 기념관 건물 내부에는 괴시리와 이색의 인연을 설명한 글과 이색의 생애에 대한 기록으로 채워져있으며 기념관 밖 공원에는 이색의 시비들로 꾸며져 있다.



"관어대는 영해부에 있는데 동해에 임하여 있으며 바위 아래에 '노는 물고기를 셀 수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해는 나의 외가가 있는 곳이니 소부에 부쳐 중원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색의 '관어대소부' 중에서



또 나이 들어 영해를 찾아와서는 어릴적 추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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