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인문학의 요체 자기 글쓰기 없는 것들은 겉멋내기에 지나지 않아

글을 쓰다 보면 자기를 고집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용뿐만이 아닙니다. 표현에서도 나만의 스타일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반듯한 것을 좋아하는 이도 있고 울퉁불퉁한 것을 좋아하는 이도 있습니다. 넓은 평야를 내려다보는 글도 있고 숨 가쁘게 높은 산을 기어오르는 글도 있습니다. 인용문 투성이의 글도 있고 자기 목소리 일변도의 글도 있습니다. 누구는 용사(用事·발로 쓰는 글)를 중시하고 누구는 신의(新意·창의적인 글)를 즐깁니다. 어떤 것이든 그 모든 글쓰기는 그 자체로 인문학입니다. 자기 글쓰기 없는 것들은 그저 빈껍데기일 뿐입니다. 겉멋내기(지식욕)에 지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스타일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글쓰기의 본질까지 밝히고 있는 인문학적 글쓰기론으로 연암 박지원의 '소단적치인'이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서도 '법과 때'라는 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글쓰기에는 법(法)이 중요할 때가 있고 때(時)를 높이 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전쟁에 비유하자면, 깡그리 적당(敵黨)을 섬멸해서 적진에 내 깃발을 꼽아야 할 때도 있고 적이라도 늙은 병사는 뒤 쫒아 사로잡기를 그만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 남김없이 다 밝혀 쓸 때도 있고 여운을 두어서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도록 도와 줘야 할 때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맥락(상황)을 살펴 코드(문법)를 적절히 변용할 필요가 있다는 가르침으로도 받아들여지기도 하고요.

공자께서는 이(利)와 명(命)과 인(仁)을 드물게 말씀하셨다. 달항당(達巷黨)의 사람이 말하기를, "위대하구나 공자여! 박학하였으나 (어느 한 가지로) 이름을 낸 것이 없구나" 하였다. 공자께서 들으시고, 제자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장차 무엇을 전문으로 잡아야 하겠는가. 말 모는 일을 잡아야 하겠는가. 아니면 활 쏘는 일을 잡아야 하겠는가. 내 말 모는 일을 잡겠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삼베로 짠 관(冕旒冠)을 쓰는 것이 예법에 맞지만, 지금 사람들은 생사(生絲)로 만드니 검소하다. 나는 여러 사람들(時俗)을 따르겠다. (신하가) 당(堂) 아래서 절하는 것이 예법에 맞는데 이제 와서는 당 위에서 절을 하니 이는 교만한지라 비록 대중과 어긋나더라도 나는 당 아래서 절하겠다" 하였다. ('논어' '자한'편)

'때의 중요성'과 '법의 필요성'에 대해 공자가 논한 내용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할 것 입니다. 저는 연암의 글쓰기론이나 공자의 '때와 법'에 대한 가르침이 공히 '인문학의 필요성과 본질'을 밝히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늙은 병사는 뒤 쫒아 사로잡기를 그만둬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이나 '말 모는 일을 잡겠다'라는 말이 곧 인문학이 왜 필요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잘 비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온갖 비리와 범죄가 발호하는 이 '짐승의 시간'에 생뚱맞게 웬 '공자님 말씀'이냐고 반문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조현병자 격리 대책이니 전관예우 근절책이니 하는 '활 쏘는 일'보다는, 합심해서 글 쓰는 인간을 길러내자는 '말 모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생각납니다. '깡그리 적당(敵黨)을 섬멸해서 적진에 내 깃발을 꼽는' 일에만 몰두하다가 생긴 일들을 다시 그 방식으로 바로잡겠다는 건 아무래도 어불성설이지 싶습니다. 아무리 '짐승의 시간'이라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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