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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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수년 전 서울 사는 친구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6개월 이상의 대대적인 공사 끝에 장사를 시작한 그의 음식점 건물의 주인이 바뀌었고 새로운 주인은 친구에게 월세를 두 배로 올려주든지 아니면 즉시 가게를 비워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애초 친구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옛 주인은 ‘새 주인이 기존의 임대차계약을 그대로 승계하기로 하였다’면서 자신은 책임이 없으니 새 주인과의 문제는 세입자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태도로 나왔다.

친구는 1970년대에 건축된 2층 양옥집을 대대적으로 개조하여 ‘반지하상가“까지 만드는 등으로 새롭게 건축물을 “창작”하다시피 하였고 어머니의 전통적인 손맛으로 만든 ‘한식’으로 주변상권의 가치를 크게 고양시켰지만 “매매는 임대차를 깬다”는 법언(法諺)을 앞세운 새 주인의 핍박을 받게 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는 “명도소장”까지 받게 되었다. 승산이 별로 없었다. 가진 모든 것과 신용까지 모두 쏟아 부은 친구는 원형탈모증까지 앓게 되었다. 유익비 등을 근거로 반소청구를 하였지만 , 소송은 조기에 끝날 뻔했다. 처음 이 사건을 맡은 서울 어느 지방법원의 민사재판부는 소송을 1회 기일로 종결하고 판결을 선고하려고 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임대차계약서의 부동문자로 쓰인 이른바 ‘원상회복’규정을 들어 임차인의 유익비(건물가치증가분에 대한 반환청구)청구를 쉽게 기각할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법원의 일반적인 실무경향이다. 건물의 전면적 보수의 경우에는 위 원상회복 규정에도 불구하고(대대적인 수리의 경우에는 그 이전 상태로의 복구, 즉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므로) 형평의 원칙에 따라 유익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예외적인 판결을 근거로 감정신청을 했다.

전주인에 대한 증인신문도 거쳤다. 친구가 애초에 계약한 기간은 60개월이었고 추후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투자한 금액을 60개월 동안에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장사를 시작한 지 8개월 정도 만에 새 주인으로부터 명도소송을 당한 것이었다. 소송은 약 3년여에 걸쳐 1심, 2심을 거쳤고 2심에서의 조정이 성립하였을 때에는 기존의 계약 기간이 6개월 정도 남아 있었다. 친구는 실제 소요된 수리비의 3분의 1 정도를 전 주인으로부터 받되 기존의 계약에 따른 월세만을 인상없이 적용하고 임대차기단도 기존의 계약과 같이 모두 인정받는 선에서 합의했다.

당시의 법 제도로서는 최선의 결과인 것으로 보였다. 친구는 또 다른 건물주를 찾아 헤맨 끝에 그 지역에 몇 안 남은 기와집을 다시 임차하여 또다시 6개월 이상의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그 친구는 “이 분은 믿을 만한 것 같다.”면서 웃음을 보였다. 서울 서쪽 어느 대학촌 인근에서 그나마 친구처럼 구제를 받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후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야당의 끈질긴 요구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일본이나 프랑스의 법제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세입자들은 터무니없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우리 사회를 만인대 만인의 투쟁이 일상화된 약육강식의 질서가 통용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조물주보다 높은 곳에 건물주님이 계신다.”는 이야기가 씁쓸히 회자되는 현실을 더 이상 그대로 두고 보아서는 안 된다. 국가는 마땅히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평가하여야 하며 소수자와 약자의 보호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한정된 자원의 합리적인 배분을 하고, 지나친 사익 추구로 인한 공동체의 해체, 사회의 양극화를 막고 구성원 모두가 조화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다. 대한민국 스무 번째 국회가 이에 부응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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