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2년 음력 3월5일, 정조의 명에 따라 도산서원에서 도산별과(陶山別科)가 치러졌다. ‘별과’라고 한 것은 1, 2차 시험인 초시(初試)와 회시(會試)를 거쳐 임금이 등위를 매기는 전시(殿試)로 치러지는 정규 대과(大科 3년에 한번씩 치르는 과거시험)와 달리 초시와 회시를 통합한 특별한 과거시험이라는 뜻이다.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나 임금이 특명을 내려 시험을 보게 했다.

224년 전 도산서원에서 치러진 별시에는 경상도 유생 7천228명이 응시해서 3천632명이 답안을 적어냈다. 당시 별시에는 너무 많은 인원이 모여들어서 다 수용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시험장을 강가로 옮겨 두 그루 소나무 사이에 시험 주제인 과제를 걸었다. 이날 별과에서 11명의 합격자를 뽑았다니 경쟁율이 650대1을 넘었다.

이 같은 지방 별과의 경쟁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경쟁률은 평균 2000대 1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보통 33명을 선발하는데 평균 6만3천명이 응시했다는 것이다. 정조 때는무려 11만명이 응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농경사회에서 공개채용 일자리가 과거 외엔 딱히 없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공무원을 ‘공복’ 이라 했다. 말 그대로 ‘국민을 섬긴다’는 뜻이지만 왕조시대나 지금이나 공공 부문은 갑(甲)이다. 한국인의 DNA에 갑질 건성이 있어서 일까. 청년층 취업 준비생 대부분이 공무원시험을 준비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난에 ‘공시족’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다. 3일 한국고용정보원이 밝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 취업준비생이 54만2천명으로 급증했다. 이중 9급 공무원 시험이 45.5%, 교원임용시험 14.8%, 회계사 등 전문자격시험 12%, 7급 공무원시험 11.8%, 기타 공무원 시험 4.6%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공무원 준비생은 교원까지 합하면 80%에 육박한다.

IMF 구제금융 이후 구조조정으로 칼바람이 불어닥친 이후 ‘철밥통’으로 연금까지 보장 받을 수 있는 공무원이 최고 인기 직종의 반열에 올랐다. 경제가 활력을 잃어 민간의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공시족’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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