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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광 동화작가
영남권 신공항이 갈등만 남긴 채 끝났다. 브렉시트와 마찬가지로 신공항 사태 역시 표에 급급한 정치권의 선동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토목사업이나 산업시설 유치에 매달리는 것을 보면서 진정으로 지역사회에서 서둘러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따져 보게 된다.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서울의 랜드마크를 조사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이 선택한 것이 한강이요. 그 다음이 남산타워였단다. 포항의 랜드마크를 시민들에게 묻는다면 무엇일까? 한때 포항에서도 정치인들이 나서서 파리의 에펠탑이나 런던의 빅벤과 같은 랜드마크를 만들자며 타워 건설을 부추겼다. 시청사나 영일만 대교에 세우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건설된 전망대에서 보이는 게 무엇일까. 울릉도나 독도가 보인다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그러나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세계 어디를 보아도 랜드마크를 목적으로 건설된 시설물은 없다. 랜드마크는 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물리적·가시적 시설물뿐만 아니라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추상적인 공간 등도 포함된다. 즉 사람들의 생각과 시간이 쌓이고, 그 도시의 각 부분이 상호 관련을 맺으면서 정신적 이미지가 만들어졌을 때 마침내 그 도시의 상징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잊어버리고 있는 진정한 우리 모습은 무엇인가. 우리의 생각과 시간이 추출해 낸 우리만의 그림은 없는가. 살펴보면 우리 도시 고유의 이미지가 널려 있다. 포항지역에는 고인돌과 봉수대가 의외로 많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소중한 유물이다. 고창과 강화도는 이를 이미지화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지역에는 500여 기의 고인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300여 기뿐이다. 불과 20년 사이에 절반이 사라졌다. 눈부신 청동기 문화를 가진 지역이었음을 외면한 결과이다.

봉수대도 그렇다. 해안선을 둘러싸듯이 12곳의 봉수대가 있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숫자다. 우리 지역은 외적을 온몸으로 막아섰던 국토의 최전선으로 호국의 땅이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호미곶 끝, 영일만과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봉화산이 있다. 이곳에 서면 일출이 일품이다. 호미곶 광장보다 수 분 일찍 해를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동해안에서 일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동지 때는 운제산으로 해가 진다. 봄가을에는 형산과 제산 사이 형산강으로, 도음산으로, 하지 무렵에는 비학산 위로해가 진다. 산정에 얹힌 해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해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릴 때는 영일만이 온통 까치놀로 빛잔치를 이룬다. 랜드마크 운운하며 천문학적인 세금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타워를 아무리 높이 올려도 봉화산보다 높지는 않을 것이다. 시가지와 영일만과 형산강과 포항의 진산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 멀리 영덕의 축산항까지 조망할 수 있는 곳을 묻어놓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한반도에서 동쪽으로 가장 돌출한 지역을 확인하기 위하여 호미곶을 수차례 답사하였다. 그 때 축산과 호미곶을 비교하려고 올랐던 곳도 봉화산이 아닐까. 이처럼 봉수대는 수많은 세월 속에서 국토방위의 역할도 했지만, 역사적 인물과 지역민들이 생업을 위해 넘나들었던 애환의 옛길이기도 하다.

버려진 고인돌과 봉수대는 우리의 역사요 정신이며, 지역사회의 얼굴이자 자존심이다. 이들을 우리 중심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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