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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광 동화작가
김종인 시인이 김천 시골 밭 자락에다 집을 지었다고 전해왔다. 홀로 복숭아 농사를 지으시던 어머니와 함께 살 거라고 했다. 김종인 시인은 울진을 시작으로 영덕, 포항, 구미, 김천 등지에서 40년 가까이 국어 교사로 지내면서 시를 써왔다. “저 가혹한 80년대의 역사 한복판, 그 현장에서 발품을 팔아 온몸으로 시를 써 오면서 ‘교육과 문학’ 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 허나 천생이 우둔하여 제대로 된 시 한 편 쓰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스스로를 낮추어 말하지만 누가 뭐라도 그는 시인다운 시인의 삶을 이어왔다.

특히 포항은 스스로도 말했듯이 가혹한 80년대를 고스란히 보낸 곳이다. 교육과 제자들의 아픔을 온몸으로 껴안고 지냈다. 구금과도 같은 해직의 고통 속에서도 시집을 출판하여 남화랑에서 처절한 시적 감동을 문우들과 나누기도 했다. 그런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그는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겸손한 자세로 이웃과 문학을 대하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는 문학이 희화화되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문학이란 무엇인가? 를 고민하였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2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소설로뿐만 아니라 점점 진화하여 영화, 뮤지컬, 연극으로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지금껏 그 소설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레미제라블은 18세기 프랑스의 혁명이 그 배경이다. 실제로 작품 속에는 1813년 나폴레옹 제국 몰락, 1823년 7월 혁명, 1832년 6월 공화정 실패가 등장한다. 그는 이러한 팩트와 픽션을 완벽하게 배치하였다. 가난에 못 이겨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에게 19년 감옥살이를 시키는 지배 권력과 권력의 희생물인 하층민을 대비시켜서 권력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있다. 아울러 관용과 사랑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에서 벗어나는 장발장, 법의 잣대로만 인간을 보는 자베르 등, 인간 전형을 다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인간 사이에 오가는 사랑과 자비를 통해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치유하고자 했다. 레미제라블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결국 인간을 향한 시선이었다.

어떤 시선으로 사회 현실을 바라보느냐가 바로 문학정신이다. 유배지에서도 자식 사랑을 놓치지 않았던 다산은 아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시경’에 있는 모든 시는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의 발로이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것은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으면 시가 될 수 없으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하고 미운 것을 밉다고 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은 시는 시라고 할 수 없다.’라고 가르쳤다.

이런 선인들의 말을 통해 볼 때 문학은 시대를 아파해야 한다. 불의를 보고 분개하고, 권력에 의하여 부당하게 희생당하는 소외된 사람 편에 서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여주고 마땅한 권리를 찾아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문학의 모습이며, 문학인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사회를 향하여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소통하고, 발언해야 한다.

김종인 시인은 작은 정자도 만들었다고 자랑하였다. 그 이름이 세심정이란다. 세상의 탐욕이라고는 씻어버린 지 오래인 그가 또 씻을 게 있다는 말인가? 아마도 도시 생활에서 묻어온 세상의 먼지까지 말끔히 씻고, 외롭고 힘든 이웃, 망가진 자연, 뭇 생명에게 위안이 되는 시를 쓰고 싶은 바람일 것이다. 가슴이 시린 세상을 토닥여 주는 시로 지은 그의 시골집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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