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韓非)는 대표적인 법가(法家) 사상가다. 그는 그 어떤 일이든 모조리 법을 척도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법률과 무관한 일이라면 듣거나 토론도 하지 않았다. 한비는 “사물은 많고도 번잡해서 한 사람의 지력으로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법전과 송사에 능한 벼슬아치를 임용한다면 고생하지 않고도 나라를 잘 다스릴 것이다”라 했다.

한번은 정나라 제상 정자산(鄭子産)이 새벽 일찍 외출하다가 문밖에서 홀연히 들리는 아낙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자산은 “울음 소리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다. 무릇 가까운 이가 병에 걸리면 걱정을 하고, 죽음에 임박하면 두려워하며, 이미 죽으면 슬퍼하기 마련이다. 그 아낙네의 곡성은 이미 죽어버린 자에 대한 곡성이었지만 슬프지 않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아낙네를 심문해서 남편을 자기 손으로 목 졸라 죽인 살인자라는 것을 알았다.

한비는 이에 대해 “이는 자산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참견하는 게 아닌가? 만약 모든 범죄가 그의 귀와 눈에 닿기만 해도 발각된다면 정나라에서 눈에 띄는 범죄는 없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그는 송사를 주관하는 벼슬아치에게 사건을 맡기지 않은 채 법의 테두리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작은 지혜에만 의지해 범죄를 찾아내니 무능한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한비는 또 “화살을 쏘는 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예라는 사람이 날아가는 참새 한 마리를 화살로 잡았다고 해서, 수많은 참새가 날 때마다 반드시 화살로 모조리 잡았다고 한다면 이는 예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만약 천하에 그물을 놓는다면 참새는 단 한 마리도 날아다니지 못할 것이다”라면서 자산과 같이 범죄를 꿰뚫어 보는 일도 법이라는 그물망을 천하에 쳐 놓는다면 의미 없다고 했다.

고위 공직자에서부터 말단 기자까지 직접적인 법 적용 대상자만 400만 명에 이르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의 시행을 이틀 앞두고 있다. 사실상 전 국민이 적용 대상인 천하에 큰 법의 그물이 쳐졌다. 세상이 거울처럼 맑아질 지, 촘촘한 그물코에 피라미들만 잡히지 않을 지 지켜볼 일이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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