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의 손자인 회남왕 유안은 팔공(八公)이라는 신선으로부터 불로장생 약을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오랜 고생 끝에 기술을 연마한 유안은 불로장생약을 먹고 하늘로 올라갔다. 피붙이 300명도 같은 날 승천했다. 심지어 그 약그릇에 남은 약을 핥아 먹은 닭과 개들도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진(晉)나라 갈홍이 지은 ‘신선전’에 실린 이 이야기에서 ‘닭과 개도 하늘을 오른다’는 ‘계견승천(鷄犬昇天)’이란 고사성어가 생겼다. 이 말은 개나 소나 하늘을 오르는 것처럼 권세에 빌붙어 벼슬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비꼬는 말로 쓰인다. 집안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가까운 식구는 물론 먼 일가친척까지도 줄줄이 출세하는 것을 두고도 이 말을 쓴다.

이 말과 비슷한 말이 ‘물 가까이 있는 누각’인 ‘근수루대(近水樓臺)’다. 권력자에 접근해 덕을 보거나 출세하는 것을 뜻한다. 이 성어는 송나라 인종 때 재상 범중엄과 관계가 있다. 범중엄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고학으로 높은 관직에 올랐다. 사람됨이 겸손해 아랫사람들과도 흉허물없이 어울렸다. 범중엄이 항주 지역의 지부(知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성내의 문무 관원들 중에는 그의 추천으로 발탁된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외지의 순찰직을 맡고 있던 소란이란 사람은 범중엄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 불만이 가득했다. 소란이 어느 날 항주 관아에 들러 범중엄을 만나 시 한 수를 지어 올렸다. “물가의 정자에서는 달을 먼저 볼 수 있고(近水樓臺先得月) 태양을 향한 꽃나무가 봄을 쉽게 맞는구나(向陽花木易逢春)” 시를 읽어 본 범중엄은 소란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서 원하는 부서로 추천서를 써주었다. 범중엄에 관한 아름다운 고사성어지만 후세 사람들은 실세에게 접근하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꼬집는 말로 썼다.

요즈음 정국의 ‘뜨거운 감자’는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에 관한 의혹들이다. 일반인들에겐 이름도 생소한 광고감독 차은택씨가 순식간에 수백억 원을 모은 재단을 좌지우지한 핵심 인물로 알려져 ‘계견승천’ ‘근수루대’ 고사를 연상시킨다. ‘계견승천’이 대통령을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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