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천변이 너무 고요해

해만 둥그렇게 입 벌리고 있어

그 입에서 나온 말을 길 위에 그려 보려고,

그 입에서 터진 소리를 울려 귓속 동굴을 꺼내 보려고,

해의 심지를 부추겨 세상을 태워 보려고,

햇빛을 백색 가루처럼 뒤집어쓴 너는 말끝이 자꾸 불꽃되어

지워지는 시를 썼다



밤의 허기로 채운 책들이 저물녘에야 오리 떼처럼 꽥꽥거리고

양쪽 귀 사이로 타전되는 밀담을 알아들을 수 없다

나는 네가 되기 위해 말할 뿐,

내가 나를 말하기엔 나는 나를 이미 모른다

머리에 뿔을 달고 혼자 떠도는 저녁 모퉁이,

빛과 어둠 사이에 그림자가 없다

해의 밀령을 판독 못해 저격당한 별만 오롯하나

오리 발자국 무늬만큼의 기별이나마 해의 이마에 적어두지 못했다





감상) 실패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베케트의 말이다 이 말이 혀끝에서 늘 맴도는 것은 실패가 우리를 얼마나 각성하게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실패하고 나면 더 잘 보이는 하늘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실패하지 않고 얻었던 것이 어디 온전히 내 것이었던가 그것은 실패한 자가 남긴 짜투리 행운에 불과할 뿐이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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