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자질구레한 일 때문에 중요한 일을 계획하지 않으십니까. 궁중의 법도를 바로잡고 언로를 열어야 하며 공정하고 바른 도리로서 국력을 튼튼히 해야 합니다. 외척의 교만과 횡포를 제재해 정치에 간여하지 못하게 하시고 궁녀들이 법도 없이 인사에 개입하는 것을 금해 나라 일에 손대지 못하게 하십시오. 나무가 안에서 썩고 집이 안에서 무너지듯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는 지난 잘못을 깊이 반성하시고 자신을 새롭게 하는 계책을 생각하소서. 임금의 잘못이 곧 국가의 병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광해군은 별시(別試)의 책문(策問)에서 “지금 가장 시급한 나라 일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조선 시대 왕들은 과거시험 마지막 절차인 정책을 묻는 ‘책문’을 통해 국가위기를 타개할 대책을 응시자들로부터 직접 듣고 장차 나라를 이끌어 갈 인재를 뽑았다. 광해군의 책문에 응시자 임숙영은 왕에게 잘 보이도록 대답하는 대신 문제의 본질은 왕에게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는 왕을 질책했던 것이다.

통치자의 자리는 외롭고 고독한 자리다. 보스의 잘못을 지적했다가는 ‘잠든 호랑이 수염 뽑는 격’이될까봐 입을 다무는 것이 조직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한 리더 뒤에는 반드시 직언도 서슴지 않는 뛰어난 보필자가 있다. “군막 안에서 계책을 내어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일에서는 내가 장량보다 못하다”고 고백한 한고조 유방의 천하통일 뒤에는 장량의 직언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엔 유능한 참모들이 많았다. 경제수석 오원철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70년대 자주국방을 위한 방위산업이 난관에 부딪치자 “어떤 병기고 분해하면 부품이다”라는 조언으로 대통령을 설득 방위산업 육성을 중화학공업의 일환으로 추진케 했다. 70년대 중화학공업의 시작이 없었다면 한국의 ‘G20 국가’ 진입은 불가능 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이 고립무원의 절대고독에 빠지지 않게 할 수 있는 참모를 못 가진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치명타다. 모든 화는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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