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에 즉위한 무종은 극도로 우매한 황제였다. 가무와 여색, 말, 개 등 견마와의 놀이에 빠져 정사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무종이 황태자 시절부터 놀이 친구였던 유근은 300여 곳에 황실 정원을 증설, 무종의 호색과 놀이 취미를 부추겼다. 이로 인해 무종의 총애를 독차지한 유근은 수하에 7명의 태감을 심복으로 두고 나라를 제멋대로 주물렀다. 사람들은 유근의 패거리에 대해 ‘팔호(八虎)’라 불렀다. 최순실을 둘러싼 ‘팔선녀’를 연상시킨다.
상소가 올라간 뒤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황제의 무반응을 비통해 하던 병부상서 한문이 다시 상소를 올렸다. “바라옵건데 유근 등 그들 일파를 체포해 사법부에 넘기고 재난의 싹이 트는 것을 미리 제거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무종은 유근 일당을 죄주기는커녕 유근을 군 총책임자의 자리에 격상시켰다. 그리고 상소문을 올린 신하들을 모두 내쳤다. 무종이 여색과 놀이에 빠진 틈을 타 국가권력을 독점한 유근은 문무백관의 승진과 파면 등 관료들의 생사여탈을 한 손에 쥐고 제 기분에 따라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황제를 제치고 ‘권력실세 1위’로 온 나라를 휘젓던 유근의 말로는 비참했다. 자기와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태감 장영에 의해 “유근이 모반했다”는 밀고로 반역죄에 몰려 황제의 명에 의해 능지처참당했다. ‘권력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근혜 대통령이다’라고 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서 근무한 박관천 전 경정의 검찰진술을 실증시키는 명나라 정치 비사다. 망하는 길은 고금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