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신종 만력제는 황음무도한 황제였다. 궁 안에 수천 명의 미녀들을 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음주 가무를 즐겼다. 재물을 탐해 백성들을 잔혹하게 착취, 황제의 재산은 날이 갈수록 불어났지만 국고는 점점 줄어들었다. 황제의 무도한 탈선을 보다 못한 신하 낙우인이 상소를 올렸다.

“폐하께서 태감 10명을 총애하여 쓰시고 정귀비를 지나치게 사랑해 그들의 말만 듣고 충신들의 충언을 모두 물리치시니 오랫동안 황태자를 낳지 못하는 것입니다. 폐하의 이 병은 바로 여색을 탐해서 생긴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여색과 재물에 지나치게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십니다. 우리가 깊은 궁궐에 살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착각입니다. 폐하 홀로 궁궐에 계신다고 한들 뭇사람의 눈은 그러기에 더욱 황제에게 쏠리기 마련이라는 것을 폐하께서는 모르고 계십니다. 여색을 멀리하시고 재물을 밝히지 마십시오. 지금 신이 간언을 올리니 만약 폐하께서 신의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신다면 설령 신을 죽이실지라도 그 죽음을 살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낙우인의 상소를 보고 진노한 신종은 낙우인을 삭탈관직 서민으로 내쫓았다.

신종의 아둔함은 관직이 비었는데도 보충하지 않고 때로는 한 사람이 여러 관직을 겸하게 한데서 드러났다. 내각의 관원이 방종철 한 사람 뿐일 때도 있었다. 방종철이 내각의 관원보충을 요청하자 “너 혼자서라도 족히 일을 처리할 수 있는데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요청을 묵살했다. 관료들의 공무집행이 얼마나 문란해지고 관료기구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통치자의 국정태만이었다.

중요직책의 공석 장기화로 국정 차질이 심했던 박근혜 정부의 인사참사를 연상케 한다. 각종 세금을 신설 환관을 세리로 임명 전국에 파견 , 백성을 수탈하는 등 신종의 실정이 극에 달하자 백성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관공서를 불태우고 세리들을 죽이는 반란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최순실 사태로 ‘사면촛불’에 의해 무너진 박근혜의 실정이 망국을 재촉한 명나라 말기의 난세와 데자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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